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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롤로? 피노 누아?..초여름 아침 장미꽃 가득한 정원 거닐어 볼까요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5.16 16:33

수정 2022.07.11 15:17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 2017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와 쇠고기 사태를 쪄낸 수육은 은근히 마리아주가 좋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와 쇠고기 사태를 쪄낸 수육은 은근히 마리아주가 좋다.

바롤로? 피노 누아?..초여름 아침 장미꽃 가득한 정원 거닐어 볼까요

[파이낸셜뉴스] 피노 누아(Pinot Noir)와인인 줄 알았다. 디캔터를 타고 흘러내리며 뿜어내는 향기는 좁은 실내를 금새 물들였다. 장미꽃 천지다. 이름모를 그냥 붉은 색 꽃도 있다.
부르고뉴 마을 중에서도 여리리여리한 뮈지니(Musigny) 마을이 아닌 지브리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바롤로의 귀족으로 불리는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Cordero di Montezemolo)'의 최상급 라인 중 하나인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 2017(Cordero di Montezemolo Gattera 2017)'의 첫 인상은 초여름 이슬을 머금은 꽃밭처럼 청아하면서도 화려했다.

지난 5월 초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Cordero di Montezemolo)' 2종을 마셔봤다. 최상급 라인인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 2017(Cordero di Montezemolo Gattera 2017)'와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랑게 아르네이스 2019(Cordero di Montezemolo Langhe Arneis 2019)'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가 나오는 산 꼭대기 삼나무 아래 밭과 나머지 포도원 전경.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가 나오는 산 꼭대기 삼나무 아래 밭과 나머지 포도원 전경.


르데로 디 몬테제몰로는 바롤로의 중심인 라 모라(La Morra) 마을에서 1340년부터 팔레티 가의 피에트리노 팔레티(Pietrino Falletti)가 라 모라의 영주가 되면서 19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와이너리다. 와이너리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포도원 몬팔레토는 28ha 규모로 가장 높은 해발 330m 언덕 꼭대기에는 거대한 레바논 삼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라 모라 뿐만 아니라 바롤로 전체의 상징이 된 이 고목은 1856년 이 가문의 결혼을 기념해 심은 나무로 한 때 이탈리아 공군의 네비게이터 역할을 했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는 바로 이 고목 밑에 위치한 1ha의 특급 밭에서 나온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 2017을 디캔터에 옮겨 30~40분 뒤 잔에 따라봤다. 짙은 빛깔로 쏟아지는 와인을 보며 약간의 걱정이 앞선다. 바롤로는 원래 와인 색깔이 진하지 않은데다 몇 년만 지나도 오렌지 빛이 살짝 비칠만큼 색이 금방 빠지는게 특징이다. 그런데 이 와인은 테두리 색까지 그대로 검붉은 색을 유지하고 있다. 5년 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일찍 열었나 하는 염려부터 디캔터의 아로마가 좋으니 충분히 익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바롤로? 피노 누아?..초여름 아침 장미꽃 가득한 정원 거닐어 볼까요


잔을 가까이 가져오니 꽃향기가 한아름 가득하다. 스월링 후 계속 코를 박게 만든다. 잔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입속에 살짝 흘려봤다. "와, 잘익었네. 맛있다." 마주한 사람의 입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장미꽃 향에서 예상했듯 붉은 색 계열의 아로마와 혀끝을 쨍하게 자극하는 산도가 일품이다. 가장 걱정했던 타닌도 거칠지 않고 잘 쪼개져 혀와 아랫 잇몸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타닌의 질감도 두껍지 않다. 아주 먹기 좋다는 얘기다. 5년 밖에 안된 바롤로가 이 정도로 먹기 좋다는 것은 이른바 '바롤로 보이즈'가 만드는 와인이기 때문이다.

바롤로 와인의 재료가 되는 네비올로 품종은 산도와 타닌이 강해 오랜 기간 숙성을 거치지 않으면 시고 떫어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 따라서 전통적 바롤로는 아무리 짧아도 10년은 지나야 비로소 와인의 개성이 좀 누그러져 마시기 좋게 변한다. 하지만 바롤로 보이즈들은 "시장에서는 보다 어린 와인을 빨리 소비하고 싶어하는데 전통적인 방법만 고집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발효를 빨리 진행해 숙성을 짧게 가져가고 타닌도 보다 옅게 만들기 시작했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가 바롤로 보이즈(파올로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엘리오 알라테, 라나토 라티)의 대표 주자 중 하나다.

다시 잔을 채워 스월링을 하니 이번에는 감칠맛이 확 돈다. 이탈리아 와인, 특히 산지오베제(Sangiovese) 와인 특유의 향이다. 이탈리아 와인에서는 늘 이런 비슷한 향이 나지만 바롤로에서 느끼기는 처음이다. 반면 바롤로 특징 중 하나인 타르 향은 없다. 진한 장미꽃 향에 피노 누아 같은 가벼운 질감, 쨍한 산도와 타닌까지 모처럼 좋은 바롤로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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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갓테라에 앞서 맛 본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랑게 아르네이스 2019도 아주 좋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 위치한 서늘한 기후에서 나는 아르네이스(Arneis)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 복숭아 등 연한 핵과일 맛에 흰꽃향이 특징이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산도가 꽤 생동감있다.
반면 아로마는 진하게 묻어나는데 아마도 라벨을 가리고 맛을 본다면 남부 시칠리아 와인인지 헷갈릴수도 있을 정도로 두 가지 특징을 다 갖췄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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