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고무줄 세수 추계는 이제 그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5.16 18:21

수정 2022.05.16 18:21

[곽인찬 칼럼] 고무줄 세수 추계는 이제 그만
세금이 잘 걷힌다. 작년엔 본예산 대비 61조원 넘게 들어왔다. 오차율이 22%에 가깝다. 역대 최고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주 기획재정부는 올해 초과세수가 53조3000억원에 이를 걸로 내다봤다.
본예산 대비 오차율이 15.5%다. 오차율이 작년보다 좁혀졌으니 칭찬을 받아야 할까? 아니다. 나라 살림을 책임진 기획재정부는 엘리트 인재가 모인 곳이다. 15% 넘는 오차율은 사실 좀 부끄럽다.

세금이 잘 걷히면 정부는 표정관리에 들어간다. 속으론 좋지만 겉으론 좋다는 표를 못 낸다. 당장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박홍근 원내대표는 올해 초과세수에 대해 "국회가 진상규명에 나서서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열을 올렸다. 168석을 가진 민주당의 경고를 귓등으로 듣다간 큰코다친다. 과연 홍남기 전 부총리와 추경호 현 부총리 중 누구한테 책임을 물을지 궁금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온통 함박웃음이다. 초과세수도 반가운데 세수오차의 책임까지 문재인 정부에 떠넘길 수 있어서다. 보수 국힘은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런데 마침 국채를 찍지 않고도 윤석열 대통령이 자영업자들에게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묘수가 생겼으니 이 아니 좋을쏘냐. 국힘과 새 정부는 총 59조4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에 들어갈 돈 대부분을 초과세수로 충당할 계획이다.

그런데 가만, 초과세수라고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나? 초과세수도 내 주머니에서 나간 세금이다. 공돈이 아니다. 물론 추경안도 국회에서 절차를 밟지만 아무래도 심사가 헐렁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6·1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2차 추경 심사는 설렁설렁 이뤄질 게 뻔하다. 이럴까봐 국가재정법은 "초과 조세수입을 이용하여 국채를 우선 상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90조). 그러나 실제론 추경이 먼저이고 마지못해 국채 상환에 약간 할당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세수오차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08년에 'OECD 주요국가의 초과세수 발생과 재정규율 사례'라는 보고서를 냈다. 다소 오래된 자료이지만,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중반에 여러 나라에서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각국 정부는 정치권의 압력에 시달렸고, 결국 세금이 더 들어온 만큼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이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구조적 재정상태를 악화시키는 과오를 범했다." 보고서는 "세수초과로 발생한 재정잉여를 국가채무·연금채무 등 구조적 재정적자를 경감시키거나, 인구고령화 대비 등 장기적 재정과제를 수행하는 데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짓는다.

기재부는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올 2월 세수오차를 줄일 방안을 내놨다. 추계모형에 국책·민간 연구기관 수치를 두루 활용하고, 세제실 안에 조세심의회를 두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세수추계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내년 예산안을 짤 땐 새로 다듬은 추계모형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무줄 세수추계는 자칫 국가재정에 큰 흠집을 낸다.
넘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모자라면 그야말로 낭패다. 펑크 난 돈은 모조리 국채로 채워넣어야 한다.
코로나 위기 속에 오차 없는 추계는 '신의 영역'이라지만 오차율 두자릿수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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