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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하우스푸어와 벼락부자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12 19:08

수정 2022.06.12 19:08

[강남시선] 하우스푸어와 벼락부자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관통한 사회적 현상에 '하우스 푸어'가 있었다. 이들 정부 동안 필자도 하우스푸어였다.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아파트 투자를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았다. 그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서울 전역이 70%였다. 이후 삶은 예상보다 혹독했다.

지금보다 낮은 급여의 절반은 꼬박꼬박 이자로 사라졌다.
당시 시중은행 금리는 5%대 중·후반이었다. 그나마 이자만 거치했던 터라 겨우 생활이 가능했다. 지금 같은 원리금 상환 의무화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30년 된 주공아파트에 사는 건 매일이 힘겨웠다. 주차할 곳을 찾아 단지 안을 헤매는 게 일상이었다. 수도꼭지를 틀고 녹물이 없어지길 마냥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5층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건 고행길이었다. 여름엔 낡은 벽걸이 에어컨 없이는 30분 이상 견디질 못했다. 매일 밤 모기들의 공습은 익숙해져야만 했다. 겨울은 그나마 낫다. 아파트 여기저기 쌓인 쓰레기와 오물들의 악취가 그나마 덜했다. 하지만 균열 심한 벽 틈으로 몰아치는 칼바람에 온종일 난방을 해야 했다. 관리사무소에 불편을 호소해도 '해줄 게 없다'는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집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하우스푸어 생활을 10년 만에 정리했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초이노믹스는 문재인 정부 초기 전 정권을 향한 공격의 단골 메뉴였다. 그랬던 문 정부 내내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빚투, 영끌이 들끓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미래 자산계층을 가르는 레거시로 떠올랐다. 감당 못하기 직전까지 빚을 내서 집을 산 젊은이는 '벼락부자'로 여겨졌다. 주식, 코인과 함께 조기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들의 주무대가 부동산이었다. 청약조차 모르던 세대들은 부동산 전문가들이 됐다.

하지만 요새 부동산 시장은 블랙스완이 사라지고 있다. 부동산 광풍기였던 지난 2년간 벼락부자를 기대했던 매수층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2%대 시중금리는 어느덧 4%를 훌쩍 넘었다. 연내 6% 이상까지 주담대 금리상승 전망이 나온다. 매수여력이 떨어지니 집값은 상승세가 꺾이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면서 다시 하우스푸어 시대가 엄습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총자산 중 실물자산 비중은 64%에 달한다. 미국(29%), 일본(38%) 등 주요국의 두 배 수준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공개한 국내 부동산금융 전체 위험노출 규모도 심상찮다.
지난해 말 기준 2566조원으로 5년 전보다 800조원 가까이 폭증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시 고위험대출군이 경제붕괴의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생애최초 주택에 대출규제를 풀겠다는 새 정부가 되새길 대목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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