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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인플레 파이터의 조건은 빠른 스텝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19 18:29

수정 2022.06.19 18:29

[강남시선] 인플레 파이터의 조건은 빠른 스텝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벌인 3년여의 싸움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싸우는 과정에서 경제적 측면의 대응 무기는 양적완화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제로 금리(0%대 기준금리)'를 유지하면서 시중에 돈을 마구 풀었던 것이다. 국내외 주식시장은 과열되고,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고, 가상자산 가격도 치솟았다. 유동성 잔치가 벌어지고, 자산거품이 일어났다. 마치 지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불었던 '닷컴열풍' 시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돈잔치는 무한정 지속될 리 없다. '잔치가 화려할수록 설거지거리는 더욱 많은 법'이라 했던가. 기세가 꺾인 코로나19가 물러날 채비를 하는 사이, '또 다른 적'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바로 '물가상승'이다. 코로나19 시기 늘어난 유동성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 따른 유가·원자재 값 급등 등이 물가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은 4.7%까지 오를 전망이다. 당초 전망치(2.2%)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코로나19 때 그랬듯 전 세계가 힘을 합쳐 물가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 초반 판세는 불리하다. 특히 세계 물가대응의 첨병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안일한 대응이 초반 스텝을 꼬이게 했다. 실제로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해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면서 기준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올해 "돌이켜보면 더 일찍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면서 실기를 인정했다. 이처럼 미국 연준이 실기하는 사이 미국의 물가는 8.6%까지 높아졌다. 이는 41년래 최고치다. 지난 16일 연준이 뒤늦게 자이언트스텝(0.75%p의 금리인상)을 단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가. 미국 연준의 실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인플레 파이터'를 공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파월 의장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물론 우리의 물가상황은 미국에 비해 나쁘지 않다. 그래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미국처럼 스텝이 꼬이면 물가는 순간 치솟을 수 있다. 한은이 올해 남은 4번의 금통위원회 회의에서 빠른 스텝의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가 물가만이 아니란 점이다. 물가 너머엔 경기침체라는 '또 다른 적'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6%로 제시했다.
과거 외환위기 직전 성장률(2%)과 불과 0.6%p 차이다. 문득 "위기는 반복된다"라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 속 주인공의 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한은은 복합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파이터'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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