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기가 잠 못자도 법 위반 아니다?"…집시법 소음기준 '빈틈' 투성이

뉴스1

입력 2022.06.20 06:36

수정 2022.07.11 15:25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 조용한 시위를 부탁하는 아크로비스타 주민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2.6.1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 조용한 시위를 부탁하는 아크로비스타 주민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2.6.1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소음 기준 © 뉴스1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소음 기준 © 뉴스1


13일 오후 문 전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보수단체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해당 단체는 전날 야간 확성기 방송 시위는 잠시 중단했지만 이날 오전부터 다시 시위를 재개했다. 2022.5.13/뉴스1 © News1 김영훈 기자
13일 오후 문 전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보수단체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해당 단체는 전날 야간 확성기 방송 시위는 잠시 중단했지만 이날 오전부터 다시 시위를 재개했다. 2022.5.13/뉴스1 © News1 김영훈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이렇게 시끄러운데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규정 이내라구요?"
"아기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는 지경인데 막을 방법이 없다네요"

대규모 집회가 자주 열리는 광화문에서 만난 직장인 A씨(43·남)와 윤석열 대통령 사저가 있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주민 B씨(62·여)의 말이다. 아크로비스타에서는 보수단체의 문재인 대통령 양산 사저 집회의 맞불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 시위 현장에는 대형 확성기가 설치된 트럭이 등장한다. 북과 꽹과리 등을 큰 소리를 내는 악기를 동원해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시위 현장 인근에서는 옆사람과 대화는 물론 전화통화 마저도 힘들다.


주민들이 경찰에 항의해 보지만 '합법'적인 시위여서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합법'의 수준과 법 규정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의미다. 선량한 국민들이 집회나 시위 소음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도록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주거지역, 등가소음도 주간 기준 65dB…어길 경우 행정 제재

20일 경찰과 국회에 따르면 현행 집시법 제14조는 '주최자가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발생시켜 타인에게 피해를 줄 때는 그 기준 이하의 소음 유지 또는 확성기 등의 사용 중지를 명하거나 확성기 등의 일시 보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에서는 대통령령을 통해 대상 지역 및 시간대(주간·야간·심야)별로 일정 기준 이상의 소음을 제한하고 있다.

일례로 주거지역의 경우 현행 확성기 등의 소음은 주간 65데시벨(dB) 이하로 바로 옆에서 사람이 말하는 수준이다. 심야에는 55dB 이하로 낮아진다. 소음은 10분간 평균 소음값을 뜻하는 '등가 소음도'가 기준이다.

최고소음도 기준은 지하철이나 버스가 내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인 85dB(주간 기준)로, 1시간 동안 3번 이상 기준을 넘을 경우 집시법 위반이 된다.

소음기준을 초과할 경우 경찰은 Δ기준이하의 소음 유지명령 Δ확성기 등 사용 중지 명령 Δ확성기 등의 일시보관 등의 행정 제재를 할 수 있다.

◇2020년 소음 기준 개정됐지만…"현장에서는 집시법 빈틈 악용하는 곳 있어"

이같은 집회·시위 소음 기준은 이미 지난 2020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한 차례 강화됐다. 야간과 심야를 구분하고, 심야시간 대 주거지역 소음기준을 60dB에서 55dB로 강화했고 최고소음도 기준도 도입됐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는 이같은 기준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관련 기준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일부 집회에서는 큰 소리를 내다가도 소음 측정 때 음량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평균값을 낮춰 기준치 초과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주거지역의 경우 집회시위 소음 때문에 민원이 많은데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집회에서는 등가 소음도 규정을 빠져나가기 위해 10분 중 5분은 큰 소리를 내고 나머지 5분은 소리를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소음도 기준 역시 1시간 동안 3번을 넘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1시간 동안 2번만 최고소음도 기준을 넘기게 되면 경찰은 단속할 수가 없다. 이 경우 경찰에서도 경고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없어 집회 시위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되는 셈이다.

◇프랑스 '배경소음도' 개념으로 시민 피해 방지…국회에도 집시법 개정안 발의

해외에서는 이같은 '꼼수'를 막기 위해 '배경소음도'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자치경찰법규에 옥외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 대비 주간(오전 7시~오후 10시) 5dB, 야간(오후 10시~오전 7시) 3dB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로나 인파가 몰려 평소 소음이 큰 곳에서는 더 큰 소리로 시위를 할 수 있지만 주택가 등 평소 조용한 곳에서는 과도한 소음을 낼 수 없도록 하는 셈이다.

서울 한 경찰서의 경비과 관계자는 "경찰은 집시법에 근거해 소음 관리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입법 등을 통해 기준을 강화하지 않으면 집시법의 빈틈을 악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계속될 것"이라고 답답함을 나타냈다.

현재 국회에도 이같은 집시법의 허점을 개정하기 위한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집회 및 시위 주최자의 준수 사항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악의적 표현으로 청각 등 신체나 정신에 장애를 유발할 정도의 소음을 발생해 신체적 피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8일 확성기 소음과 원색적인 욕설이 난무하는 집회 방송 송출을 방지하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이를 중계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반사회적 집회·시위 방지법'을 발의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