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서비스 개발사가 사용자의 지갑에 개입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디파이의 '탈중앙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본래 디파이는 대출, 예치, 청산 등 금융 서비스 내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 상 스마트컨트랙트로 자동화돼 구현된다. 이 과정에 개발사가 직접 개입하면서 디파이의 본질인 탈중앙성이 실현가능한지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솔라나 블록체인 기반 대출 서비스 '솔렌드(Solend)'는 개발사가 사용자의 지갑에 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제안을 투표에 부쳤다. 디파이 서비스들은 사용자 커뮤니티가 투표를 통해 서비스의 크고 작은 사항을 결정하는 탈중앙화자율조직(DAO) 방식으로 운영된다.
해당 제안은 97%의 찬성 표를 받아 통과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제안이 디파이의 본질을 해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안이 통과되는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제안 내용 자체가 디파이의 본질인 탈중앙화를 무시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제안 내용에 따르면 솔렌드 서비스에는 대규모의 암호화폐 솔라나(SOL)를 담보물로 맡긴 이른바 '고래'가 존재했다. 만약 솔라나 가격이 22.3달러까지 떨어질 경우, 고래 대출금의 20%에 해당하는 2100만달러(약 270억원) 치 암호화폐가 강제청산당하게 된다.
청산은 솔라나 기반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이뤄진다. 이 때 대규모 청산이 발생할 경우, 해당 물량을 받아줄 수 있는 DEX도 없을 뿐더러 청산으로 인해 솔라나 블록체인 상 거래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블록체인 네트워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또 대출금을 상환하기도 전에 솔라나 가격이 더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 즉, 솔라나 블록체인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에 솔렌드 개발사 솔렌드랩스는 직접 고래 지갑에 개입하기로 했다. 솔라나 가격이 지난 19일 28달러대까지 떨어지는 등 강제청산 가능성이 커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솔렌드랩스는 고래 계정에 임시로 접근해 청산이 장외거래(OTC) 시장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을 투표에 부쳤다. 제안이 통과되긴 했으나, 제안하는 과정에선 어떤 사전 공지도 없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솔렌드랩스의 결정이 디파이의 기본 원칙을 해쳤다고 지적했다. 솔라나 블록체인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해도, 서비스 내 모든 과정이 개발사의 개입 없이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다.
코인텔레그래프는 "솔렌드랩스의 디파이 지갑 개입은 암호화폐 업계의 탈중앙화 사상과는 거리가 멀고, 이 업계에 대해 더 많은 비판이 쏟아지도록 만들 것 같다"고 지적했다.
테라 커뮤니티 인플루언서인 펫맨(Fatman)은 "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조치이긴 하지만 고래 계정의 동의 없이 이뤄진 일이므로 이를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트위터 사용자가 "강제청산을 예상하고 솔라나에 '숏 포지션'을 취한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한 조치"라고 지적하자 "맞는 말이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수긍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