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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식당' 포항 수화식당 이야기

기사내용 요약
농아인들 직접 음식 만들고 서빙…말 없이 눈빛 손짓 의사소통
클럽이었던 곳에 들어선 수화식당…'가장 시끄러운 곳에 가장 조용한 식당'
김소향 대표 "취업 돕던 통역하면서 절망…많은 농아인들 안정적 삶 살게 하고파"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경북 포항에서 농아인들과 함께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을 운영하는 김소향(47·여) 대표. 뒤로 직원들이 수화를 설명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2022.06.24. right@newsis.com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경북 포항에서 농아인들과 함께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을 운영하는 김소향(47·여) 대표. 뒤로 직원들이 수화를 설명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2022.06.24. right@newsis.com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왼손바닥을 하늘로 펼친 채로 주먹쥔 오른손을 왼손 위에서 좌우로 흔든다. 다시 오른손을 펴 입으로 가져다 댄다. 비밀스런 제스처를 본 종업원은 잠시 뒤 쟁반에 비빔밥을 가지고 온다.

주문에 말은 단 한 마디도 필요 없다. 이 식당에서는 주문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모두가 약속한 듯 눈빛과 표정, 손짓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한다.

불편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판단이 성공적으로 전달됐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오는 음식도 더 맛이 있다고 느껴진다.

경북 포항에 있는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의 이야기다. 수화식당은 말 그대로 ‘手話’식당이다. 농아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한다. 비빔밥, 제육덮밥, 바지락칼국수 등 한식부터 파스타, 필라프, 피자 등 다양한 메뉴도 요리한다.

직접 반찬을 만들어 팔거나 배달하고, 대구경북 전역에 출장뷔페도 나간다. 최근에는 ‘케이터링’도 진행하고 있다.

수화식당은 농아인들이 근무한 곳이라 다른 어느 식당들보다 조용하다.

자리에 앉은 손님이 메뉴판을 보고서 주문을 할 때면 생전 해보지 못한 수화로 종업원들과 어색한 대화를 나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식당이 들어서기 전 이 건물이 ‘클럽’이었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공간'에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식당'이 들어선 셈이다.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경북 포항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 메뉴판. 메뉴 주문 시 수화방법이 적혀 있다. 2022.06.24. right@newsis.com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경북 포항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 메뉴판. 메뉴 주문 시 수화방법이 적혀 있다. 2022.06.24. right@newsis.com
지난 2020년 6월 3일 이곳에 수화식당을 오픈한 김소향(47·여) 대표는 요식업에 발을 들이기 전 장애인들의 취업을 돕는 수화통역사였다.

4명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몸이 두개라도 모자랐던 그가 수화식당을 차리기로 결심한 이유는 ‘절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장애인들을 고용하려는 회사 면접 자리에 가면 대부분 결과가 뻔한 통역을 해야 했다”며 “그런 자리에서 여러 번 좌절한 농아인들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큰 절망을 느꼈고,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농아인들 중에서도 취업이 가장 어렵고 취약한 중년 여성에 집중했다.

이들이 손 재주가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 대표는 함께 할 수 있는 요식업을 창업아이템으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요리는 ‘비빔밥’이었다.

김 대표는 “누구는 콩나물무침을 잘 했고, 누구는 시금치, 누구는 무생채를 잘하더라”며 “모아보니 비빔밥 재료가 돼서 첫 메뉴가 비빔밥이 됐다”고 회상했다.

1호점인 ‘한숲 맛 이야기‘에서 농아인들과 함께 일하는 소식을 알게된 장애인고용공단이 김 대표를 지원하면서 2호점이자 진짜 식당의 모습을 갖춘 현재의 수화식당이 탄생했다. 매출은 한 해 6억원을 돌파했다.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경북 포항에 있는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 농아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식당이다. 2022.06.24. right@newsis.com
[포항=뉴시스] 이바름 기자 = 경북 포항에 있는 '수화식당(signing restaurant)'. 농아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식당이다. 2022.06.24. right@newsis.com
김 대표는 이곳에서 농아인들의 정신적 보호자이자 사회 진출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한동대학교 상담심리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무엇보다 농아인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본인의 전공을 살려 대인기피증이 있는 여성 농아인에게 격려와 함께 지속적으로 서빙을 시키거나, 그릇을 30개밖에 세지 못한 남성 농아인에게 “5개씩 나눠서 세어보라”고 했다.

물론 여성농아인은 현재 많은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게 됐고, 남성 농아인은 200~300개가 넘는 그릇을 다 세다 못해 출장뷔페의 모든 장비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한 농아인 커플도 있다고 한다. 사회와 단절된 채 상처받은 농아인들이 이곳 수화식당에서 조금은 느리지만,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 대표는 “농아인들을 돕기 위해 저 역시 졸업식 바로 다음날 바로 후라이팬을 잡았다”며 “농아인들의 인생 최고월급이 기초수급이 되게 할 수 없었고 ‘우리도 국가에 세금을 좀 내보자’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남편이 농아인이다. 역시 남편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수화식당에 있는 농아인들처럼 앞으로 많은 장애인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리고 이들이 나중에는 창업도 해 자립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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