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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초나라 혜왕이 절인 배추를 먹다가 〇〇〇를 삼켰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02 06:00

수정 2022.07.05 10:52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약초의 치험례를 바탕으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살아있는 의료용 거머리(왼쪽)와 약재로 사용하는 말린 거머리 수질(水蛭)
살아있는 의료용 거머리(왼쪽)와 약재로 사용하는 말린 거머리 수질(水蛭)

때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혜왕(惠王)이 즉위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혜왕은 평소에 숙질(宿疾)을 앓고 있었다. 뱃속에 항상 무언가 잡히는 듯한 덩어리가 있었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동반되었다.

어느 날 혜왕이 어의를 불러 진찰하기를 명하자, 어의는 복진을 해 보더니 “왕의 복부에 나타나는 찌르는 듯한 자통(刺痛)이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필시 어혈통(瘀血痛)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곧 제조(提調)와 함께 약 처방을 의논하여 올리겠사옵니다.
”라고 아뢰었다. 그러나 혜왕은 “이 복통은 참을 만하니 별도의 방제(方劑)는 올리지 말라.”라고 명했다. 혜왕은 만성적인 복통이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 않아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초나라에는 영윤(令尹)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영윤은 재상(宰相)에 해당하는데, 궁에서는 정치의 수장을 맡았고 전쟁 시에는 군사를 통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혜왕은 항상 대내외적인 대소사를 논할 때는 영윤을 불러 상의했다.

그런데 혜왕은 평소 소금에 절인 배추(저·菹)를 좋아했다. 그날도 수라상에는 그날 갓 담근 싱싱한 절인 배추가 올라왔다. 혜왕은 절인 배추가 맛있어 보여 급하게 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절인 배추에 살아있는 거머리가 한 마리 붙어 있었던 것이다. ‘절인 배추에 거머리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라상에 음식이 올라오기 전에는 항상 감식관(監食官)이 음식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심지어 독은 없는지를 살펴본 후에 올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어쩐 일인지 기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필경 감식관이 불려 온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혜왕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것을 트집 잡아 감식관을 들라 한다면 분명 감식관은 제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 어찌할고...’라고 생각하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감식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감식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혜왕이 절인 배추를 집어들어 살펴본 후,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감식관의 얼굴을 본 혜왕은 갑자기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들었다. 혜왕은 순간, 꿈틀거리는 거머리가 붙어 있는 절인 배추를 삼켜 버렸다.

그런데 혜왕은 배가 사르르 아파왔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라고 고민하면서 감식관을 물리치고 큰 소리로 영윤을 불러들였다. “지금 당장 영윤을 들라 하라!” 혜왕은 영윤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한 후, “내가 방금 절인 배추를 먹다가 살아있는 거머리를 그냥 삼켜 버렸는데, 감식관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오. 지금 배가 살살 아파오니 걱정이오. 이놈의 감식관을 어찌 처분해야 하겠소?”하며 영윤에게 물었다.

영윤은 익히 감식관을 잘 알고 있었고 친분이 있었다. 감식관이 영윤에게도 특별한 음식을 간간히 대접해 왔기 때문이다. 영윤은 혜왕에게 고했다.

“지금 왕께서 감식관에게 알리지 않고 거머리를 삼켜 버리심은 백성을 보살핌에 그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아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덮어 주겠다는 애민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복통이 심하지 않으신 것 같아 다행이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제가 어의를 불러들여 거머리를 삼켰을 때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어의가 어전에 불려왔다. 전후 정황의 설명을 들은 어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왕에게 말을 잘못 전하면 필경 감식관뿐만 아니라 자신도 해를 입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어의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거머리는 수질(水蛭)이라고 해서 먼 선조 때부터 예로부터 약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특히 어혈을 풀고 장 속의 적취(積聚)를 치료하고 징결(癥結)을 깨뜨리는 효능이 있사옵니다.” 적취나 징결은 뱃속에 생긴 종양을 일컫는 병명들이다. 그러면서 “의서에 보면 거머리를 잘못 삼켰을 때 비방이 전해지는 것이 있사오니, 이를 곧바로 조제하여 올리겠나이다.”하며 물러났다.

어의는 서둘러 다시 어전에 들었다. 그러면서 혜왕에게 환약과 탕을 올렸다. “이것은 어떤 처방이냐?”하고 혜왕이 물었다. “이 환약은 선조 때부터 비결(祕訣)로 내려온 처방입니다. 그리고 이 탕약은 꿀물이옵니다.”하고 아뢰었다. 사실 그 환약은 거머리가 사는 논의 진흙과 돼지의 비계를 섞어 빚은 것이었다. 어의 자신도 문헌에서만 읽었지 이 처방을 해 본 바가 없었고, 그 처방 내용을 자세하게 말한다면 필경 ‘이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하고 책망을 들을 것 같아 그 내용은 발설하지 않았다.

왕은 어의가 올린 환약을 꿀물로 삼켰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복통이 점차 사그라 들었다. 혜왕은 어의에게 “어의의 처방이 즉효를 나타내는 것 같다. 배가 아픈 것이 좀 나아지는 것 같구나. 이제 안심이니 물러가도록 하라. 수고가 많았다.”라고 치하했다.

이 사달 이후로 약 달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혜왕이 평소 앓고 있던 뱃속의 덩어리가 작아지더니 이제는 그 찌르는 듯한 통증도 사라진 것이다. 혜왕은 어의를 다시 불러들였다. “어의가 얼마 전 올렸던 환약이 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숙질에까지 효과가 있었던 같다. 그 처방 내용이 궁금하구나.”라고 물었다. 어의는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어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소신이 생각건대, 그 환약 때문에 왕의 숙질이 좋아진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 아마도 그날 삼킨 거머리가 도리어 효과를 나타냈을 것이옵니다. 왕께서 감식관을 불쌍히 여기셔서 거머리를 삼켜 버림에 하늘도 감복하여 원래 거머리가 가지고 있는 어혈을 풀고 적취를 제거하는 효능까지 드러낸 것으로 사려되옵니다. 정녕 이것은 왕이 천자(天子)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영윤은 어의의 달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 어의는 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게 하면서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의의 아룀을 듣고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혜왕이 어의의 말로 인해 자만에 빠질까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아룄다.

“왕께서 백성과 신하를 사랑하심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옵니다. 이번 일로도 그 자혜로움은 더욱더 명백해진 것 같습니다. 다만, 왕은 두 가지 과오를 범하셨습니다. 첫 번째, 거머리를 무모하게 삼키신 것입니다. 아무리 감식관이 불쌍하게 보였더라도 거머리를 삼키시면 안되었사옵니다. 옥체를 보존하소서. 두 번째, 만약 거머리를 삼키셨다면 이를 저에게 말씀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셨어야 했습니다. 만약 제가 감식관을 벌하소서 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국정을 논하심에 신하의 말을 귀담아들으시는 것도 좋겠지만, 매번 신하의 뜻대로만 하신다면 국난이나 환난을 이겨내심에 필경 사사로운 신하의 아룀이 해(害)가 될 수 있사옵니다. 심지(心志)를 더욱더 굳게 하소서.”라고 했다. 이는 왕이 칼을 꺼내 들 수도 있는 고언(苦言)이었다.

영윤의 말이 끝나자, 혜왕은 잠시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영윤의 말이 맞소. 내 이번에 거머리 한 마리 때문에 큰 깨달음을 얻었소. 세상사가 모두 새옹(塞翁)의 말과 같구려. 앞으로 국정을 논함에 있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겠소.”하면서 껄껄껄 웃었다. 영윤과 어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다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감식관 또한 더욱더 세심하게 왕의 수라상을 살폈다.

이로써 혜왕은 더욱더 어진 마음으로 초나라를 57년 동안이나 다스리면서 무병장수했다. 이 이야기는 초나라 혜왕이 거머리를 삼켰다는 '초혜왕탄질지사(楚惠王呑蛭之事)'라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 楚惠王食寒菹得蛭, 恐監食當死, 遂呑之, 腹有疾而不能食. 令尹曰, 天道無親, 惟德是輔. 王有仁德, 病不爲傷. 王果病愈.(초나라 혜왕이 차가운 절인 배추를 먹다가 거머리를 보았는데, 감식관이 죽임을 당할까 걱정하고는 마침내 삼켜 버렸고 배가 아파서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영윤이 아뢰기를 ‘하늘의 도에는 친소가 없으니, 덕이 있는 자만을 도울 뿐입니다. 왕께서 인덕이 있다면 병에 걸려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결과적으로 왕의 병이 나았다.
)
<본초정화> 水蛭主逐惡血瘀血, 破血癥積聚.(거머리는 악혈과 어혈 등을 몰아내고 혈액이 뭉친 덩어리와 적취 등을 깨뜨린다.)
<의휘> 治飮水誤呑水蛭, 取其處泥土作丸, 米飮呑下, 則蛭蟲裹泥土中, 出大便. 又食蜜, 卽下爲水.(물을 마시다가 잘못하여 거머리를 삼킨 것을 치료할 때는 그곳의 진흙으로 환을 만들어 미음으로 삼키면 거머리가 진흙 속에 싸여 대변으로 빠져나온다.
또한 꿀물을 먹으면 물이 되어 내려간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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