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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나 죽으면 장애 아들은…" 아버지는 농약병을 들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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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나 죽으면 우리 아들 어떻게 살아갈꼬…."

A씨(당시 40대)는 2006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당시 6살이었던 둘째 아들 B군이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인 자신 때문에 장애를 안게 된 것은 아닌지 A씨는 자괴감에 빠졌다. 갈수록 실망만 커진 탓에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양육 문제를 두고 수년간 아내와 불화를 겪었다.

그로부터 13년 후 2019년 2월 A씨는 어깨 통증 및 동맥경화 증상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온몸이 무기력해졌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져 우울증을 겪게 됐다.

지난 세월 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나름 자부해온 그였지만 어려워진 살림에 건강까지 나빠지자 살아갈 자신을 잃었다. 심지어 아내마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A씨에게 B군(당시 19세)이 눈에 밟혔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장애인인 아들이 사회에서 차별받으며 살아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고민 끝에 A씨는 B군을 먼저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A씨는 2019년 어린이 날인 5월5일 부산 사하구 집 앞에서 놀던 B군에게 잠시 어디 놀러 가자고 불렀다. 이들은 다마스를 타고 3시간쯤 이동해 인적이 드문 한 공터에 도착했다.

A씨는 차 안에 있던 농약을 집어 병에 따른 뒤 B군에게 마시라고 건넸다. 하지만 B군은 "냄새나서 싫다"며 농약을 마시지 않고 집에 가자며 A씨를 보챘다.

할 수 없이 A씨는 B군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잠깐만 기다려라"고 달래며 계속 시간을 끌었다. 그로부터 8시간 뒤 새벽 4시30분쯤 B군이 잠이 들자 A씨는 차 안에 있던 공구함에서 조용히 흉기를 꺼내 B군을 향해 휘둘렀다.

깜짝 놀래며 잠에서 깬 B군은 피를 흘리며 A씨의 손목을 붙잡고 "잘못했다. 집에 가자"며 때리지 말라고 울며 사정했다. 이에 마음이 약해진 A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살인미수 혐의로 법정 앞에 선 A씨는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했지만, B군을 비롯한 가족들과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노력하지 않았다.

B군 역시 목숨을 잃을 뻔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평생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싫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범행 수법의 위험성 등에 비춰볼 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아들을 유인해 차에서 잠들기를 기다려 흉기로 찌르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했다는 점에 더욱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은 자식에 대한 연민으로 스스로 범행을 중단해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며 "피고인은 건강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가 장애인 아들이 남은 가족의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여 범행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없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B군의 형인 첫째 아들도 충격과 슬픔 속에서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은 A씨의 판결 불복으로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 모두 A씨의 상소를 기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