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반지하와 지지율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17 18:20

수정 2022.08.18 09:03

[곽인찬 칼럼] 반지하와 지지율
지난주 큰비 내린 뒤 반지하 참사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사는 40대 자매와 여동생의 10대 딸이 갑자기 불어난 물로 귀한 생명을 잃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우리는 '기생충'의 본질을 놓쳤다. 그저 저 영화가 프랑스 칸, 미국 아카데미 같은 큰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정작 '기생충'이 한국 사회, 나아가 인류에 던진 코즈모폴리턴적 메시지는 외면했다.
'기생충'은 한국의 소득격차를 고발한 사회성 짙은 영화다.

영화는 반지하, 냄새, 살인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아랫동네 반지하에 사는 가족사기단이 윗동네 부자를 등칠 계획을 세운다. 큰비가 내리자 반지하는 목까지 물이 찬다. 부자 사장은 기사로 고용한 기태(송강호)한테서 반지하 특유의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를 맡고 질색한다. 모멸감을 느낀 기태가 가든파티에서 사장을 칼로 찌른다. 빈부격차→반지하→냄새→살인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저 영화의 본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지하 참사 현장을 곧바로 찾았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도 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대책을 앞다퉈 내놨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뭔가 어색하다. 왜 그럴까.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간 보수 일변도 정책을 폈다. 정부는 기업이 내는 법인세율을 내리려고 한다. 규제를 푸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사면, 복권됐다.

보수 정부가 보수색 짙은 정책을 펴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잘못 아니다. 다만 형평성이 아쉽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여론이 외면한다. 보수라도 자본주의 부작용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빈부격차가 대표적이다. 이러다 보니 윤 정부가 불쑥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보이면 시늉으로 비친다. 반지하에 대한 관심이 그렇다. 어느새 윤 정부는 가진 자 편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세계 으뜸 갑부로 꼽히는 미국 투자가 워런 버핏은 부자한테 세금을 더 걷으라고 성화다. 인류애의 순수한 발로일까? 아니다. 버핏은 소득격차를 줄여야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다는 걸 안다. 시장경제는 버핏 같은 자본가의 이익을 지켜주는 울타리다. 요컨대 버핏에게 부자 증세는 이기적인 장기투자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긴다. 오른쪽 끝에서 정책을 펴면 기껏해야 20~30% 나온다. 왼쪽 끝도 마찬가지다. 지지율을 올리려면 중원으로 나와야 한다. 오른쪽에 발을 딛고 왼쪽으로 보폭을 넓히면 된다.

예로부터 치수는 나라의 흥망을 가르는 중대사다. 고대 중국의 우 임금은 물길을 요령껏 다스린 덕에 임금 자리에 올랐다. 80년 만에 찾아온 역대급 폭우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민심을 다독일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이 적기다.

용산시대를 연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을 정착시켰다. 신선한 변화다.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국정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국민의 뜻, 둘째도 국민의 뜻"이라며 "저부터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했다. 중도를 포용하는 윤 대통령의 빅스텝을 기대한다.
그러면 지지율은 오르게 돼 있다. 마침내.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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