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론스타가 남긴 세 가지 교훈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12 19:04

수정 2022.09.12 19:04

[곽인찬 칼럼] 론스타가 남긴 세 가지 교훈
이런 악연이 또 있을까. 햇수로 길게는 19년, 짧게는 10년이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론스타 얘기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시장에 급매물로 나온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노무현 정부 때다. 부실 외환은행에 공적자금이든 외국자본이든 자본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있었다. 그 일을 당시 변양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실무적으로 맡아서 처리했다.


10년 전, 그러니까 2012년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신청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다. 론스타는 세계은행 산하 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손해배상금으로 약 47억달러를 요구했다. 사건은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 판정이 내려졌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되팔 때 일부 손해를 입었으니 한국 정부가 2억1650만달러, 우리돈 약 3000억원(달러당 1380원 기준)을 배상하라는 게 요지다.

참 독하다. 론스타는 1조3834억원을 주고 외환은행 지분 51%와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러곤 3년이 지나자 재매각에 나섰다. 국민은행(2006년), HSBC(2007년)와 계약이 깨진 뒤 마침내 하나금융지주(2012년)에 외환은행을 넘겼다. 4조원 가까운 돈을 받고 팔았으니 단단히 한몫 챙긴 셈이다. 론스타가 '먹튀'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게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각이 완료되자 론스타는 한국 정부에 과녁을 맞췄다. 결국 약 3000억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일단 텄으니 사모펀드 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얼마 전 국회에서 배상판정 취소 신청 등을 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금액이 얼마이든 "국민의 혈세"라고 했다. 맞다. 한 장관이 론스타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스타 장관'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론스타가 얄미운 것과 별도로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외환은행과 같은 대형 금융사를 외국계 사모펀드에 함부로 팔아선 안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돌이켜보면 연륜이 짧은 낯선 외국계 사모펀드에 국내 메이저 은행을 판 건 성급했다. 그 통에 온 나라가 홍역을 앓았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반외자정서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당시 정책결정 라인에 있던 관료들을 또다시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붙이는 건 옳지 않다. 뇌물 수수처럼 뚜렷한 범죄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한 정책판단은 존중하는 게 낫다. 이번 판정을 계기로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우리 사회는 '변양호 신드롬'을 한 차례 치렀다. 신드롬은 한 번으로 족하다.

마지막으로 화두를 하나 던지고 싶다. 사모펀드 말만 나오면 누구랄 것 없이 손사래부터 친다. 외국계 론스타가 씨를 뿌렸고, 라임·옵티머스 같은 토종 사모펀드가 먹칠을 했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분명 순기능이 있다.
부실기업을 사들여 말끔하게 정리할 수도 있고, 주식·채권·파생상품 투자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낙후한 한국 금융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꼽히는 게 자산운용이다.
사모펀드 때리느라 막상 K사모펀드 육성은 말도 못 꺼내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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