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실손보험, 복잡한 매듭 풀려면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21 18:09

수정 2022.09.21 21:15

[특별기고] 실손보험, 복잡한 매듭 풀려면
"실손보험 있으세요?"

병원을 찾으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고액의 치료를 권유하는 것은 이제는 흔한 장면이다. 환자는 치료비 부담이 없고, 병원은 수입이 생겨 과잉 진료의 유인이 생긴다. 국민 3명 중 2명이 가입한 국민보험상품인 실손보험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과잉 진료가 증가하자 보험사는 도덕적 해이가 의심되는 경우 지급을 거절했고 이는 보험금 분쟁 급증으로 귀결되었다.

올해 상반기 보험소비자와 보험사 간의 보험금 분쟁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은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실손보험 분쟁 해결에 자체적으로 총력대응하고 있지만 담당자 1인당 미처리 사건은 615건으로 인당 처리능력을 훨씬 초과한 상태이다. 적체사건 처리에만 15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근 월평균 1000건을 초과하는 신규 분쟁이 접수되고 있어 장기 적체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 산하 부서의 인력을 투입해 실손보험 분쟁 전담반(TF)을 운영하는 등 실손보험 분쟁의 신속·공정한 처리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분쟁 담당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음에도 접수 건수가 더 빠르게 증가해 미처리 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분쟁 처리 지연에 따른 소비자 불만까지 응대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불필요한 과잉 치료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보험사의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해 보험료 인상으로 연결된다. 과잉 치료는 단기적으로 개인 이익 실현의 기회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 비용을 증가시켜 보험의 사회적 효용을 떨어뜨린다.

일부 의료계의 과잉 진료가 보험사의 지급심사 강화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분쟁 증가의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일부 보험가입자의 과도한 의료쇼핑 등 도덕적 해이의 책임을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에게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하는 일도 계속돼서는 안 된다.

그리스신화의 '고르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t)'은 '복잡한 문제를 의외의 방법으로 풀어낸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고르디아스가 그의 수레를 기둥에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두었는데 이를 푸는 자가 소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神託)이 전해졌다. 수많은 사람이 매듭을 풀어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마침내 이를 풀어낸 자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림으로써 풀어냈다. 매우 당연한 방식인데 보통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다.

복잡하게 얽힌 실손보험의 매듭을 풀 방법은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의료계는 각성하고 자율정화를 실천함으로써, 보험계약자는 윤리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해결책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도덕적 가치 추구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도덕과 윤리는 쓸수록 줄어드는 가치가 아니라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크고 단단해진다.
개인의 이익 추구만 매달리다 공동선을 잊어버린 실손보험의 현 상황을 바라보며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갈증이 더욱 느껴진다.

김은경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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