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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영화인의 꿈 담은 ‘영화배우술’ 그리고 박루월

뉴시스

입력 2022.09.24 06:00

수정 2022.09.24 06:00

[서울=뉴시스] 영화배우술 (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제공) 2022.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배우술 (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제공) 2022.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는 1897년 무렵 이 땅에 들어와 도시인의 대표적인 오락거리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도시의 불빛이 거리를 촉촉이 적실 무렵이면 사람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 갔다. 스크린에 쏟아지는 하얀 빛 속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환상적인 공간이 있었다. 꿈을 현실 앞에 비춰 보여주는 이곳을 사람들은 ‘꿈의 궁전’이라 불렀다.

스크린 속 등장인물에 매혹된 사람들은 자신도 영화의 주인공이 돼 현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 보길 원했다. 1920년대 청년시절을 보내고 있던 박루월(본명 박유병) 역시 다른 영화청년들처럼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영화관인 ‘단성사’를 운영하던 박승필이 집안 어른인지라 어려서부터 극장 출입이 잦았던 박루월에게 영화관은 누구보다 익숙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박루월은 단성사를 중심으로 영화동호회를 만들어 운영했고 한때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공부를 했다. 박승필이 사망하며 단성사의 큰 변화가 시작되던 1931년 그는 ‘영화시대’라는 이름의 영화잡지를 창간해 편집자가 됐다. 이 잡지는 보통 한, 두호 정도만 발간하고 문을 닫았던 여느 영화잡지들과는 달리 해방 이후인 1949년까지 근 20년 동안을 단속적으로 발행되었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물자통제가 강화되고 외환 관리를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의 수입이 중지되자, 박루월이 편집인으로 있던 ‘영화시대’ 역시 발간을 중단했다. 이때 그는 변변한 영화잡지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배우가 되려는 청년들이 읽고 참고할만한 교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영화배우술’(삼중당서점, 1939)을 집필한다. 이 책은 우리글로 된 최초의 영화교재였다.

영화잡지인으로 오랫동안 분투한 탓인지 책의 앞부분에는 이 책의 감수자로 이름을 올린 안석영을 비롯해 영화계 대선배인 윤백남을 위시해 안종화, 김유영, 서광제, 이규환, 박기채, 이익 등 대표적 영화인들과 동아일보사의 홍효민 등의 발문이 실려 있다.

목차를 보면 ‘어떤 사람이 영화배우가 되는가?’ ‘영화배우의 모든 조건과 그 자격’ ‘당신은 어떠한 타입의 사람인가?’ ‘촬영소는 어떠한 곳인가?’ 등, 말 그대로 영화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배우로서의 자격과 마음가짐, 영화제작 현장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담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발간 이후 오랫동안 영화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물론 영화 현장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필독서처럼 인식됐다.

해방 후 박루월은 ‘영화시대’를 복간해 영화잡지인으로 삶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잡지를 운영하는 것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았다. 1949년 ‘영화시대’는 발간을 멈췄고 그 후 전쟁이 터졌다.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영화잡지의 발간을 지속하던 그는 이미 장년의 나이에 들어섰다. 더 이상 정력적으로 일할 힘이 없었다.

박루월은 전후 서울에서 지독한 가난으로 고통 속에 살았다. 영화잡지에 미쳐 가정을 내팽개쳤던 그를 가족들도 외면했다. 자연 행려병자로 거리에서 지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영화인들이 모이는 충무로의 국제다방에 나타나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손을 내밀어 구걸을 했다. 어느새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박루월은 1965년 3월10일 오전, 출근인파로 가득한 종로5가의 길 모퉁이에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영양실조였다.

평생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빛에 매료되었던 그의 삶은 정작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졌을 때처럼 낯설었다.
고단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관객처럼 그의 삶은 어두웠고 수많은 영화에서 보았던 해피엔딩은 그의 삶에는 없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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