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이게 다 공매도 때문이다?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01 18:29

수정 2022.11.01 18:29

[기자수첩] 이게 다 공매도 때문이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기자가 대학입시를 준비할 무렵 유행했던 말이다. 수능 모의고사를 망쳐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레임덕에 시달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탓하곤 했다.

최근 증시 관련 기사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은 "공매도나 빨리 폐지하라"이다. 이런 댓글의 기저에는 "지금 주가가 떨어지는 건 모두 공매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에서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육박했다.
지난해 5월 공매도를 재개한 이후 최대 규모이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연합회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서 공매도 금지를 주장하는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자본시장연구원의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금융당국에서 '공매도 금지' 카드를 고민했을 때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의 부도설까지 나올 정도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었다"면서도 "그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공매도 금지가 충분히 실효성이 있었겠지만, 현재 공매도를 금지시키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공매도는 기본적으로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전략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주가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에 공매도가 늘어나는 것이지 공매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다고 볼 순 없다. 물론 국내 개인투자자가 쉽게 취할 수 없는 전략인 데다 대규모 공매도가 시장교란을 하는 부분도 있긴 하다. 그러나 거래행태 중 하나인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 자체가 시장에 더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도 "대형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롱(매수 후 보유) 포지션과 주가 하락을 기대하는 숏(공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잡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롱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그런데 공매도를 금지하면 롱과 숏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에 롱 포지션까지 뺄 수 있다.
공매도만 금지하면 주가가 오를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급격한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글로벌 자본시장이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공매도를 금지하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fair@fnnews.com 한영준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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