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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 검사가 아니었으면…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


(강원=뉴스1) 박찬성 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변호사 = 가히 ‘신박하다’라고 할 만한 무고 사례가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대학 동기인 남성을 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으나,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유사강간 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자처한 무고행위자 스스로 상대방의 DNA를 자신의 신체에 남겨두고는 고소를 했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고행위자의 고소에 따라서 경찰 수사가 이뤄졌으나 그 과정에서는 무고 피해자의 반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유사강간 피해가 발생했다고 하는 때로부터 무려 2주가 경과한 시점에 피고소인의 DNA가 무고행위자의 신체에서 채취됐다고 하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긴 검사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보완수사가 이뤄지게 됐고, 이를 통해서 그제서야 사실관계가 드러났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성폭력 피해자임을 자처한 측의 진술을 사실상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면서 그 진술과 객관적 물증 간의 합리적 부합 여부를 전연 판단하지 않은 채로 기계적으로 사건을 송치했던 것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것을 두고 과연 수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무비판적인 ‘받아쓰기’를 일컬어 수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일까?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성인지감수성’의 중요성을 천명한 이래로 성폭력 피고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있어서 피해자 진술이 갖는 무게는 그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막중해졌다. 이는 분명 진일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인지감수성’에 입각해 틀에 박힌 ‘피해자다움’이라는 선입견을 마땅히 버려야 한다는 원칙이 만연히 오해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그에 비례해 커지고 있다는 우려를 접어두기 어렵다.

피해진술을 함부로 배척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함께, 특정한 진술의 신빙성 판단을 위해서는 그 진술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 등이 확인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유효해야 하는 것임에도, 간혹 수사와 재판 실무를 보면 별다른 실체적 판단 없이 ‘피해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믿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때가 전혀 없지만은 않다.

이번에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사례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안타까운 고백이지만 필자도 악랄한 무고행위의 실례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주지의 사실과도 같이, 수사와 재판은 단순한 ‘확률게임’이 아니며 어떠한 사유로도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100건 가운데 98건 내지 99건이 실제 피해사례가 맞다고 해서 한 사람의 억울한 무고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 용인돼서는 안 된다.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거의 모든 사례들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는 진짜 피해자의 안타까운 외침이 맞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세히 따져 볼 필요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열 명의 진범을 설령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근본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가 처해있는 특별한 사정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고, 뭇사람들이 관념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이라는 허상에 매몰돼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옳다. 여기에 이론(異論)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엄연한 무고를 함부로 외면해도 좋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고, 그렇게 이해돼야 할 까닭도 전혀 없다.

세상에 무고행위가 실재하고, 그로 말미암아 억울한 피해를 입는 누군가가 생긴다면 그의 시선에서 성희롱‧성폭력을 근절하자는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 것인지는 자명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부당한 공격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심지어 정당하기까지 하다. 누군가 단지 한두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과 느낌을 마음속에 갖게 된다면 그러한 반감은 어느샌가 부지불식간에 세간에 널리 스며들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분별없는 무고행위는 궁극적으로는 성폭력 피해로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에 다시 한번 소금을 뿌려대는 극악한 가해행위나 하등 다를 바 없다. 무고행위에 대하여 관용 없이 엄벌해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 박찬성 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