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야산에 듬성듬성 남은 판잣집, 언제 올지 모를 철거에 불안 [개발의 그림자 강남 판자촌]

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01 18:09

수정 2023.02.01 18:09

(2) 강남 개포2동 달터마을
1981년 개포지구 개발에 밀려 터전 잃은 주민들 판자촌 형성
2015년부터 철거, 112채 남아
"3000만~4000만원 보상금으론 주거비 싼 이곳 말고 갈곳 없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달터근린공원 안에 위치한 한 판잣집. 산지에 위치해 있으며 추위를 막기 위해 비닐로 외부를 둘러쌌다. 뒷편으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노유정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달터근린공원 안에 위치한 한 판잣집. 산지에 위치해 있으며 추위를 막기 위해 비닐로 외부를 둘러쌌다. 뒷편으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노유정 기자
야산에 듬성듬성 남은 판잣집, 언제 올지 모를 철거에 불안 [개발의 그림자 강남 판자촌]

서울 강남구 수인분당선 구룡역 5번출구 개포고등학교 뒷편에 수목이 우거진 언덕이 있다. 지도에는 '달터근린공원'으로 표기된 지역이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무 사이로 판잣집들을 볼 수 있다. 바로 달터근린공원 내 무허가 판자촌인 '달터마을'이다. 달터마을은 지난 1981년 4월 당시 건설부가 발표한 개포지구 구획정리사업 계획에 따라 터전을 잃은 지역 주민들이 이주해와 하나둘 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됐다. 2015년 당시 285가구가 있었으나 같은 해 강남구청이 달터근린공원 조성사업을 진행하면서 하나둘 보상을 받고 이주했다. 현재 달터마을에는 112가구만 남았다. 남은 주민들은 보상금 문제로 구청측과 대립하고 있다. 당초 2015년말 착공 예정이던 달터근린공원 사업은 8년이 되도록 진척이 없다. 근린공원 사업은 계속 연장돼 오는 2024년 12월 31일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슬레이트로 둘러싼 집들

1일 달터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주변에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을 내려다보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철거를 앞두고 있다. 강남구청에서 최근 5년간 공개한 지장물 조서 등에 따르면 달터마을의 집 대부분은 목재 등으로 만들어졌다. 산으로 이주해온 주민들이 주변 나무를 베어내 집을 짓고 형편이 닿는 대로 온갖 자재를 더한 것이다. 일부 건물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으며, 시멘트 블록이 주재료로 이용된 건물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곳에 산 지 22년 됐다는 조모씨(70)는 "동파 돼서 열흘 동안 수도를 못 썼다"며 "땅이 딱딱하게 얼어 수도관 공사를 할 수도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씨는 석유 난로를 이용해 몸을 녹이고 있었지만 최근 가스비가 너무 올라 보일러와 석유 난로 번갈아 이용한다고 했다. 보상을 받고 이주한 이웃집들이 철거되면서 추위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원래는 다닥다닥 붙은 이웃집이 외풍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철거 과정에서 수도관이 땅 위로 노출돼 동파 위험이 커지기도 한다.

달터마을 주민 유모씨(67)의 1층 집의 경우 'ㄷ(디귿)'자 모양으로 양쪽에 이웃집 두채가 세워져 있었다. 원래 가운데 빈 공간에도 집이 있었으나 이곳 주인이 이사하면서 그대로 철거됐다. 휑한 빈 공간에는 시멘트 바닥과 화장실로 쓰였을 타일 바닥만 남아 있었고 한가운데에는 수도관이 드러나 보였다.

■"이주대책 있으면 왜 안 가겠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달터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보상금이다.

강남구청은 감정평가기관에서 평가한 건물 가액으로 보상금을 산정하고 협의계약 후 이주 시 현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한다. 토지는 이들의 소유가 아니라서 토지 평가액은 보상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보상금을 이용해 이전 후 주거를 마련해야 하지만 보상금이 적고, 타지에서의 거주 비용 부담은 너무 높아 이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달터마을 주민자치회 및 이주보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곳 주민들이 3000만~4000만원 정도 보상금을 받고 나간 것으로 안다. 5000만원 이상 받은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또 주민 곽모씨(64)는 "합당한 이주 대책이 있으면 우리가 왜 안 가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 사는 집은 따로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 내 집이고, 수도도 함께 써서 생활비가 절약된다"며 "여기서 나가면 가스, 수도세 등 모든 공과금이 추가되고, 가계 지출이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건설 노동직으로 일했던 유씨는 "자식들 키우느라 돈 없어서 여기서 살지. 여유가 있으면 왜 여기 살겠나"라며 "임대아파트는 30만~40만원 임대료가 나가는데 여긴 자기 기름때는 보일러 비용 정도만 나가지 관리비는 없다"고 말했다.


유씨의 경우 매달 국민연금 40만원을 받아 생활한다고 한다. 주민센터에서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로 매달 140만원가량 받기도 했으나 1년짜리 계약이 끝나 현재에는 별다른 수입 없이 저축해둔 돈을 쓰고 있다고 한다.


조씨는 "공원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지. 사람답게 살다가 가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며 "지금 있는 곳에서 계속 살게 해줬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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