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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문가들 '한국 핵무장론' 대안제시 "군사적∙경제적 비용 등 고려해야..."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09 08:56

수정 2023.02.09 08:56

“민간 핵 협력 확대…한국 원전 산업 희생 가능성 경고도"
한미, 양국 기업 원전 공동 수출 추진 경제적 이익 클 것
“미국 핵 역량 잘 알리고, 전술핵 재배치 사전 결정적 논의해야”
“워싱턴, 한국의 핵무장 논의 심각히 받아들여..놀라진 않았을 것”
[파이낸셜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올해 1월 1일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는 '전술핵무기의 다량 생산' 계획도 밝히며 올해도 '국방력 강화' 행보를 가속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올해 1월 1일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는 '전술핵무기의 다량 생산' 계획도 밝히며 올해도 '국방력 강화' 행보를 가속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한국에서 자체 핵 개발과 전술핵 재배치,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 전문가들이 민간 핵 협력 확대 같은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한국 핵무장에 따른 원자력 발전 중단 등 군사·경제적 대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등이 나왔다.

최근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는 것보다 미국과 민간 핵 협력을 확대하고 확장 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나이더 국장은 ‘새로운 한·미 합의로 북핵 위협을 억지하는 법’이라는 글에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확대해 원전 공동 수출에 나서면 양국의 원자력 에너지기업 모두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한국 국민들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경우 지불해야 할 경제적 대가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정부가 체코, 이집트, 폴란드, 터키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미 원자력 에너지기업들이 현지 원전 건설에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나이더 국장은 이같이 양국이 핵에너지 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지하고 무력화하는 공동 대응책을 강화할 경우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6일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도 한국 국민들이 북핵 위협에 직면해 한국도 핵무기 역량 획득이 필요하다고 반응하는 것은 여러 측면 중 한 가지만 보는 것이라며 "당초 한·미 간 민간 원자력 협력을 추동한 요소 중에는 상업적인 부분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의 핵무장 요구를 억제하는 자연적인 동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자신의 글이 “한국 일각의 견해처럼 한국이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과 비교해 미국과 협력하는 것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관련협정은 1956년 한·미는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 협정'을 체결했고 1972년 기존 협정을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협력을 위한 협정' 체결로 대체했다. 1974년 1차 개정됐고 현존하는 한미 원자력 협정은 2015년 4월 22일 협정을 일컫는다. 유효기간은 20년으로 2035년까지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은 한국이 미국산 물자와 핵연료를 공급받고 미국은 비확산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특히 개정 이후에는 원자력 연구개발과 원전 수출의 공동이익을 위해 상호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한·미 공군이 지난 2월 1일 미 전략자산 전개 하에 2023년 첫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국방부가 2일 밝혔다. 훈련에는 우리 측 F-35A 전투기와 미국 측 B-1B 전략폭격기 및 F-22·F-35B 전투기 등이 참여한 가운데 서해 상공에서 시행됐다. 사진=국방부 제공
한·미 공군이 지난 2월 1일 미 전략자산 전개 하에 2023년 첫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국방부가 2일 밝혔다. 훈련에는 우리 측 F-35A 전투기와 미국 측 B-1B 전략폭격기 및 F-22·F-35B 전투기 등이 참여한 가운데 서해 상공에서 시행됐다. 사진=국방부 제공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워싱턴의 민간 연구소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과 준비 절차를 거론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VOA에 “한반도 핵무기 재배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계획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미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경우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며, 우리의 의도는 단지 관련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CSIS 보고서는 미래 어느 시점에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기초 작업과 관련한 모의 계획 훈련을 한미 동맹이 검토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재배치에 필요한 핵무기 저장고의 후보지 파악과 저장 시설 준비, 핵무기 관련 보안 훈련, 주한미군 F-16이나 F-35 전투기의 핵 탑재 인증 절차 등에 대한 계획 연습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해 한국에 더 잘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핵전략과 기존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운용중인 ‘핵계획그룹(NPG)’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설명하는 것 외에도 전쟁 중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를 상정해 세운 작전계획을 한국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전쟁 중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미국의 핵 옵션을 비롯한 작전계획을 한국이 벌써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며 “만일 아니라면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작계 2015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 등이 포함돼 있지 않아, 한미는 작계 2022에는 북한의 소형 전술핵무기 위협과 합동요격지점 등을 포함한 내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18일 발사한 화성-17형 미사일 시험 발사 영상을 19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18일 발사한 화성-17형 미사일 시험 발사 영상을 19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한국의 핵무장 상황을 가정한 예상과 대가도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안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핵 유혹과 한미 동맹’이라는 기고문에서 전술핵이 한국에 재배치될 경우 북한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판다 연구원은 미국이 한반도에 B61 전술핵폭탄을 전진 배치할 경우 F-15E나 F-16C/D 전투기가 투하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유사시 북한은 이 전투기들이 소재한 한국내 비행장과 B61 관련 기반시설에 선제공격을 감행할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판다 연구원은 한국에 전술핵을 실제로 배치하지 않고 트라이던트 Ⅱ D5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에 탑재한 저위력 핵무기로 보복 공격을 하는 것이 매력적인 대안이지만 러시아 때문에 미국이 대북 보복용으로 사용하길 주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다 연구원은 트라이던트가 발사돼 북한을 타격하기까지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는 것은 유용한 역량이지만 미국이 한국에 이러한 내용을 강조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 잠수함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잠수함의 위치에 따라 러시아 영토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는데 이 때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미국의 핵 공격으로 해석해 확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사일이 러시아 영토 상공을 비행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의 조기경보시스템은 한반도를 향해 발사된 미국 잠수함의 미사일을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따라서 미국 관리들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한국과 이 옵션을 논의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진(왼쪽)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양해각서 서명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장관은 "한미 양국은 대북 확장억제를 강화하기로 약속했으며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물샐틈없는 공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박진(왼쪽)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양해각서 서명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장관은 "한미 양국은 대북 확장억제를 강화하기로 약속했으며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물샐틈없는 공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미국 내 비확산 전문가들은 한국이 핵개발에 나설 경우 원전 산업을 희생하게 될 것이라며 경제적 대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한국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라늄을 다른 국가들이 수출하지 않아 한국 발전량의 30% 내외를 차지하는 원자력 프로그램이 중단될 것이라는 경고다.

한국 핵무장에 대한 논란은 한·미 이견 노출에 따라 북한의 의도대로 한미 동맹에 틈을 벌릴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한국 내 핵무기에 대한 논의와 마찰은 김정은의 정치전 전략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며 “김정은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주 국가인 두 동맹이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중요하고 옳은 일이지만 김정은의 전략도 고려해야할 것 이라고말했다.

이 밖에 의견으론 스나이더 국장은 “미국의 논문이 한국에서 일종의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논쟁은 윤석열 정부가 관련 옵션과 노력을 표현할 때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진전됐다”며 미국 전문가들이 한국 대중의 우려에 대응하려 연구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판다 연구원은 윤대통령의 핵무장 발언이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며 “냉전 이후 미국의 동맹국이 공개적으로 핵무기 획득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워싱턴이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의 공개적 논의와 양국 정부 간 비공개 협의 내용은 다를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가 윤 대통령의 발언에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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