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서 콘서트 '이적의 노래들' 펼쳐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추모·'카니발' 김동률과 추억의 무대
'달팽이' 등 조명 연출 인상적…나흘간 1만2000명 운집
피리 적(笛)을 예명으로 내세운 '피리 부르는 사나이', 아니 노래 부르는 가수 이적(이동준)은 노래를 이렇게 정의했다. 이적이 지난 17~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친 콘서트 타이틀은 '이적의 노래들'이다. 데뷔 30주년을 목전에 둔 그는 여전히 우리 마음 속을 불러내고 있다는 걸 증험(證驗)케했다.
이적이 솔로곡뿐 아니라 듀오 '패닉', 프로젝트 듀오 '카니발' 시절의 히트곡까지 망라한 이번 공연은 그의 가사가 시곗바늘처럼 도는 영상으로 시작했다.
샤막(반투명 스크린) 뒤에서 등장한 이적은 마치 고래가 헤엄치는 심해 속에 있는 듯한 모습으로 첫 곡 '웨일 송'을 불렀다. 노래를 콘서트 타이틀로 정한 만큼 '노래에 대한 노래'로 시작한 것이다. 전도연·정경호 주연 드라마 '일타스캔들' OST '반대편', 그리고 히트곡 중 하나인 '빨래'가 초반을 장식했다.
이적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17일 첫 무대에서 그는 "세종문화회관이 대중음악에게 문을 닫고 있었던 건 십 몇 년 전에 다 끝났지만 이곳에서 공연한다는 건 저에게 여전히 나름 각별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에 이어 평소 부르지 않던 '숨' '민들레, 민들레'까지 들려준 이적은 재작년 소극장 공연 외에 큰 무대에 공연하는 건 2019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사이키델릭한 '숨'은 라이브에서 황홀한 매력을 선사했다. 로킹한 '물'을 따라 부르는 관객들을 벅차게 바라본 그는 "오랜만에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돼 너무 좋네요. 이런 말은 되게 유치하지만 '우리 편'만으로 꽉 차 있는 느낌이 들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이적은 지난 7월 별세한 포크 대부 김민기(1951~2024)를 추모했다. 그는 "제가 굉장히 존경하고 사랑하던 뮤지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제가 어릴 때 이분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저의 영웅들 중에 한 분"이라면서 "이분과 개인적으로 알게 된 이후 자주 뵙진 못하지만 저를 참 예뻐해 주셨다"고 했다.
김민기 '아름다운 사람'은 작년 말에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울려퍼진 적이 있다. '전방위 뮤지션' 정재일이 김민기가 객석에 있던 자신의 콘서트에서 이 곡을 불렀다. 샘플링한 김민기의 육성과 정재일의 피아노, 기타 라이브 연주가 어우러졌다. 정재일의 공식 데뷔 팀인 밴드 '긱스'에 함께 몸 담았던 이적이 기타와 목소리로만 그에게 들려줬던 곡이다. 이렇게 노래는 돌고 돈다.
이적은 '아름다운 사람' 직후엔 록그룹 '들국화'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 '걱정말아요 그대'를 통기타 한 대만으로 들려줬다. 학전에서 열렸던 '김광석 다시 부르기'에서 이 곡을 불렀던 이적은 당시 "김광석 선배가 이 곡을 편곡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김민기가 "야 깜찍하다"라고 반응했다는 애기도 들려줬다.
이적의 또 다른 '아름다운 사람'은 이날 공연장에 실제 등장했다. 이적과 1997년 카니발을 결성했던 김동률이다. 현재 두 사람은 음악 기획사 뮤직팜에 함께 몸 담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춘 무대는 지난 2015년 김동률 단독 콘서트 '2015 김동률 더 콘서트'에 이적이 게스트로 출연한 이후 10년 만이기도 하다.
대외 활동이 극히 드문 김동률은 이번 이적 콘서트 게스트가 공식적으로 올해 첫 스케줄이라며 웃었다. 이적은 가요계 후배들이 자신에게 김동률의 근황을 계속 묻는다며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동률 씨에게 '(총 4회 진행한) 이번 콘서트에서 두 번 정도 같이 와서 하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을 했더니 '야 그러면 누구는 카니발을 못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4회 공연에 모두 나와주겠다고 했다"며 고마워했다. 이적과 김동률은 카니발로서 '그땐 그랬지 '벗' '거위의 꿈'을 부르며 관객들을 추억 여행에 젖게 했다. 만 스물세 살 때 인생을 추억하는 가사를 썼던 두 사람은 "이제 가사의 의미가 와 닿는다"고 했다. 김동률은 이와 함께 곧 신곡을 낼 것이라고 깜짝 예고하기도 했다.
이적은 2부 첫 곡 역시 노래에 대한 노래인 '노래'로 시작했다. "'노래라는 게 어마어마한 힘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던 그 순간"을 노래한 곡이다. 이어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다행이다' 등 크게 히트해서 이적의 노래 팔자를 바꾼 노래들이 이어졌다. 가수 정인에게 선물한 '미워요', 드라마 '장미맨션' OST '천천히'에 이어 '레인' '달팽이' 그리고 콘서트 레퍼토리 다양화를 위한 신곡 '술이 싫다'까지 들려줬다.
1995년 패닉으로 데뷔한 이적은 가능한 오래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이에 쌓인 노래들이 많이 있는데, 그 노래들을 들어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이렇게 함께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또 곡을 내고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즐겁게 뜨겁게 여러분들과 함께 노래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본 공연 마지막곡들인 '그대랑'과 '하늘을 달리다'를 들려줬다. '압구정 날라리'와 '왼손잡이'로 이어지는 앙코르는 세종문화회관을 페스티벌 현장으로 바꿔놓았다.
탄탄한 세션의 밴드, 현악 편성의 사운드 뿐 아니라 이번 이적의 콘서트는 조명, 영상 등 다양한 무대 연출도 빛났다. 특히 '달팽이'를 부를 땐 마치 달팽이가 객석에서 관객들 사이를 느릿느릿하게 기어가는 듯한 조명 연출을 했다. "바다를 건널 거야" 대목에선 바다의 파도처럼 조명이 전면에서 출렁거렸다. 이렇게 대중적이면서 시적이면서 현학적인 대중음악 조명 연출은 오랜만이었다. 가슴 벅찬 '하늘을 달리다'에선 분수처럼 조명이 쏟아졌다.
터져나오는 노래의 홍수 속에서 이적의 노래는 이렇게 계속 살아남았다. 공연장엔 젊은 관객들도 꽤 눈에 띄었는데, 오래되면서 새로운 이적 노래의 힘이다. 이적에게 뮤즈는 노래 그 자체다. 노래에 대한 노래가 많은 이유다. 그건 그의 삶뿐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연주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적에게 노래는 명사가 아닌 동사다.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 자체다. 우리가 그래서 같이 노래한다. 나흘 동안 1만2000명이 그렇게 함께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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