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 기조 속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을 조이는 것을 넘어 실수요자이자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정책대출까지 조이기에 나섰다. 그 대상이 무주택자·신혼부부 등 실수요자가 주로 받는 '서민대출' 성격이 강하고, 이사·입주 등 잔금을 치르려는 목적이 많아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실수요자 혼란에 규제 적용을 잠정 연기했지만 오는 24일 종합 국정감사 전 결론을 내리기로 한 만큼 규제 적용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1일 국회, 국토교통부, 금융권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당초 이날 시행 예정이었던 디딤돌대출 규제를 잠정 유예하기로 했다. 이번 유예로 이사나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디딤돌대출로 잔금을 치러야 했던 실수요자가 혼란을 겪었으나, 당장은 걱정을 한시름 덜게 됐다.
다만 '잠정 연기'일 뿐 '폐기'는 아니어서 추후 시행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는 24일 국토부 대상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종합 국정감사 전 결론이 나올 관측이다.
디딤돌대출은 부부합산 연 소득 6000만 원(신혼부부 85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5억 원(신혼부부 6억 원) 이하 주택을 살 때 최대 2억 5000만 원(신혼부부 4억 원)까지 연 2.65~3.95% 저금리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무주택에 부부합산 소득이 낮고, 아파트 가격 제한까지 있어 상급지가 아닌 지방의 실수요자 서민 대상 '주거 사다리' 성격이 짙다.
당초 디딤돌대출 제한 방안은 구체적으로 △방공제(소액임차보증금) 필수 진행 △생애최초 담보인정비율(LTV) 80%→70% △준공 전 신축 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후취담보 제한 등이다. 전세사기피해자 대상 전용 디딤돌대출을 제외한 신생아·생애최초특례대출도 규제 대상에 모두 포함됐다.
예를 들어 생애최초 무주택자가 지방의 3억 원 아파트를 생애최초로 구매할 경우, 기존에는 2억 4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LTV가 70%로 줄어드는 바람에 2억 1000만 원까지 한도가 줄어든다. 여기에 방공제 지역에 따라 방공제 2500만~5500만 원까지 한도가 줄어들면 당장 수천만 원의 자금이 더 필요하게 된다.
신혼부부의 경우 한도를 꽉 채워 대출받을 예정이었다면, 당장 부부 합산 소득만큼의 자금이 더 필요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일 경우 수도권 상급지가 아닌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에서 혼란이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잔금이 필요한 수요자는 한도가 줄어든 만큼 신용대출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디딤돌대출 금리보다 훨씬 높은 5~6%대 대출 이자를 갚기에는 부담이 크다.
우선 디딤돌대출을 받고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추가로 받는 방안도 있다. 디딤돌대출 금액이 보금자리론 한도인 3억 6000만 원보다 적을 경우 차액만큼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출이 실행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그사이 당장 잔금을 치러야 한다면 단기 자금 확보 방안이 필요한 점, 보금자리론의 금리가 디딤돌대출보다 높은 점은 서민들의 부담이다.
정부가 정책대출까지 조이려는 배경엔 가계대출 관리 기조 속 은행권 자체 주담대 잔액은 증가 폭이 감소했지만,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 잔액이 주담대 잔액을 떠받치고 있는 영향이 크다.
금감원의 '가계대출 동향'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 일반 주담대는 8월 7조 6000억 원에서 9월 4조 4000억 원으로 증가 폭이 크게 꺾였으나, 디딤돌·버팀목 증가 폭은 8월 3조 9000억 원, 9월 3조 8000억 원으로 거의 동일했다.
실수요자의 배신감은 큰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책대출 수혜 대상 또는 지원 규모를 축소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집값 상승 요인으로 꼽히는 정책대출을 관리하겠지만, 대상 축소 없이 운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당시 박 장관은 "생애최초 주택 마련 대출이나 신생아 특례대출은 중요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출이라고 생각한다"며 "관리는 하지만 대상은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년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둔 포항 거주 직장인 이 모 씨(30·남)는 "입주까지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디딤돌대출을 받으려던 사람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대출이 안 나올까 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며 "첫 내 집 마련까지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정책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한 만큼, 추후 다시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이미 은행권에 전세대출과 함께 정책대출도 DSR 적용 산출을 요청한 바 있다. 추후 지역별, 소득별로 DSR 차등 적용하는 방안 등이 추가로 제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디딤돌대출에 대한 규제 또한 폐기된 것이 아닌, '잠정 유보' 상태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디딤돌대출 규제) 관련 논의가 있으니, 논의가 끝날 때까지 잠정 유보하기로 했다"며 "논의가 끝날 때까지 연기한 것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토부로부터 21일 시행 예정이던 디딤돌 대출규제를 잠정 연기하기로 보고받았다"면서도 "급한 불은 껐지만 '정책 철회'에 대해 정부가 난색을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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