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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주년 남궁옥분 "거품 빼고 초심으로…난 역시 포크더라"

연합뉴스

입력 2024.12.09 11:44

수정 2024.12.09 11:44

9년만의 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 거야'…함춘호 기타 연주한 리메이크 음반 "부끄럽지 않도록 타협하지 않은 삶…미사리 활동으로 노래에 사명감 생겨"
45주년 남궁옥분 "거품 빼고 초심으로…난 역시 포크더라"
9년만의 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 거야'…함춘호 기타 연주한 리메이크 음반
"부끄럽지 않도록 타협하지 않은 삶…미사리 활동으로 노래에 사명감 생겨"

포크 가수 남궁옥분 (출처=연합뉴스)
포크 가수 남궁옥분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추억 속 노래에서 옛 아날로그 정서를 꺼내고 싶었어요. 거품을 빼고 통기타 하나 메고 노래하던 초심을 담으려 했죠."
포크 가수 남궁옥분에게는 평생 안고 있는 질문이 있었다. '후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하고 있는가, 내 자리는 어디인가.'
포크 음악 동아리 '참새를 태운 잠수함'에서 공연하다 음악다방 '쉘부르' 무대에 섰고, 이곳에서 오아시스 레코드 사장 눈에 띄어 1979년 '보고픈 내 친구'로 데뷔한 지 벌써 45년이 흘렀다.

1981년 통통 튀는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가 크게 히트하면서 KBS '가요톱텐' 4주 1위에 올랐던 그는 KBS 방송음악대상 여자신인상과 MBC 10대가수 가요제 10대 가수 등에 연이어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후 청춘의 벅찬 감정이 느껴지는 '꿈을 먹는 젊은이'도 큰 사랑을 받았지만, 1985년 '재회'가 히트하기까지 남궁옥분의 마음 한편엔 자신이 추구하던 감성적이고 절제된 포크 음악에 대한 열망이 커져만 갔다.

남궁옥분이 9일 발표한 리메이크 언플러그드 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 거야'는 이처럼 한때 입은 '어울리지 않는 옷'에 대한 회한과 자신을 되찾으려는 진솔한 고백이 묻어난 작품이다.


포크 가수 남궁옥분 (출처=연합뉴스)
포크 가수 남궁옥분 (출처=연합뉴스)

'가시나무'(시인과 촌장), '모두가 사랑이에요'(해바라기), '꿈에'(조덕배), '제비꽃'(조동진) 등 주로 1980년대 발표된 명곡 15곡이 사십년지기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연주에 맞춰 남궁옥분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재해석됐다.

지난 7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남궁옥분은 "(한창 인기를 누리던 1980년대는) 사실 너무 바빴기에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의 나는 (음악적으로) 형편없는 아이였다"며 "이후 제 중심을 찾고자 TV 출연 같이 저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거절했는데, 결국에는 상보다도 더 큰 기쁨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도 사람들이 1980년대 초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를 부르며 동동 뛰는 남궁옥분이 저답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하지만 실은 이후 사랑받은 '재회'를 부르는 모습이 진짜 제 모습"이라며 "그 노래('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가 그렇게 잘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 색깔과는 상관 없이 회사에서 만든 대로 부르는 앵무새 같은 모습이었다"고 돌아봤다.

남궁옥분이 새 앨범을 낸 것은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음반 이후 9년 만이다. 트리플 타이틀곡으로 정한 '지금은 헤어져도', '모두가 사랑이에요', '가시나무'에서는 겨울과 잘 어울리는 쓸쓸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그러나 노래를 찬찬히 듣고 있노라면 잿더미 속에 발간 불씨가 살아있듯이, 살가운 그의 성품 같은 따뜻한 온기가 숨겨져 있다. 신과 인간의 교감을 철학적으로 음미한 '가시나무'에서는 바른 길을 찾고자 무던히 애써온 그의 면모도 느껴졌다.

포크 가수 남궁옥분 (출처=연합뉴스)
포크 가수 남궁옥분 (출처=연합뉴스)

'모두가 사랑이에요'와 '내 마음의 보석상자', '사랑의 시' 등 해바라기 노래 세 곡을 리메이크해 수록한 점도 눈에 띈다.

"1985년쯤 해바라기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재회' 후속곡으로 부르게 해달라고 한 반년 동안 쫓아다녔어요. 그래서 겨우 '오케이'를 받아냈는데, 해바라기가 '대박'이 나면서 무산됐죠. 그로부터 몇십년이 흘러서야 한을 풀었습니다. 하하."
남궁옥분은 "저는 목소리의 유니크함, 그 하나 덕분에 여태까지 버틴 게 아니겠느냐"라며 "이번 작업을 통해 '역시 나는 포크였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제 목소리를 반주에 얹어갔다면, 이번에는 함춘호의 훌륭한 기타 연주를 제 목소리로 끌고 가야 해 쉽지는 않았다. 몇 번이나 작업물을 엎었다"고 떠올렸다.

데뷔 45년 된 베테랑 가수가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것도 1980년대 타인의 명곡을 나침반 삼아 떠나기로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법하다.

남궁옥분은 "이번 앨범에 집착한 이유는 포크 가수로서 후배들에게 부끄럽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며 "활동 초창기에는 음악 순위·오락 프로그램에도 나가는 등 '100% 포크'라고는 할 수 없는 활동도 했다. 그래도 어느 시점부터는 단 한 번도 제 뜻을 다른 것과 타협해 본 적이 없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남궁옥분 새 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거야' (출처=연합뉴스)
남궁옥분 새 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거야' (출처=연합뉴스)

그가 말한 '어느 시점'은 인생의 전환점으로, 1997년 찾아간 30평 규모의 작은 미사리 라이브 카페 활동이었다. 한때 지상파 TV 무대를 주름잡던 그이기에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노래한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래, 이 자리가 내 자리야'라는 생각이 확 느껴지는 겁니다. 그다음부터는 사명감으로 노래했어요. 저는 관객을 만나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란 사명감이 미사리에서 생겨난 거죠."
그는 미사리에서 약 10년간 활동하며 1990년대 물가로는 이례적인 월 1천만원대 출연료도 받았다. 이곳에 대한 고마움을 안고 산다는 그는 다음 달 신보 발매 쇼케이스도 미사리에서 열 계획이다.

남궁옥분은 태블릿으로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 정도로 미술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번 앨범 재킷 속 캘리그라피(손글씨)도 직접 썼다.

또 매일 PT(1대 1일 맞춤 트레이닝)와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책 집필도 틈틈이 하는 등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내년에는 신곡 발매 계획도 있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산 가수로 남고 싶어요. 상업적으로 잘 나가던 저보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걷어낸 저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ts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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