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탄핵 정국'이 열리면서 국내 조선업계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늑장 사업' 딱지가 붙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은 물론, 캐나다·폴란드 잠수함 프로젝트 등 해외 대어(大漁) 사업을 잡기 위해 뭉친 '민관 원팀'도 삐걱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방산 협력을 위해 한국을 찾았거나 방한 예정이었던 해외 정상들이 잇달아 일정을 취소·연기했다.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지난 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문을 취소하고 귀국했으며,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도 5~7일 예정했던 방한 계획을 연기했다.
자파로프 대통령은 당초 KAI를 방문해 한국형 기동헬기(KUH) 시험 비행과 생산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테르손 총리도 지난해 5월 한덕수 국무총리의 유럽 순방 당시 "한국과 방산 협력 방안을 적극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만큼 국내 업계의 기대가 높았던 상황이었다.
국정혼란이 본격화하면서 방산업계가 유탄을 맞은 셈인데, 우려가 커지자 방위사업청은 전날(9일) 입장문을 통해 "해외방산협력 활동은 국내 상황과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며, 주요 국가와도 평상시와 같이 협력을 진행 중"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시장 내 불안감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내년 필리핀·페루 잠수함 사업 입찰을 비롯해 캐나다와 폴란드 등 굵직한 함정 수주를 준비하는 조선업계에선 "민간(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이 갈등을 풀고 화해했는데, 정작 정부의 컨트롤 타워가 사라졌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잠수함 도입을 추진 중인 필리핀(약 2조 원)과 페루는 이르면 내년 중 사업자 입찰을 시작할 예정이다. 폴란드는 8조 원 규모의 잠수함 3척 건조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캐나다도 60조 원 규모의 3000톤급 잠수함 도입을 위한 사업자 입찰을 2027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특수선 양강(兩强)인 HD현대중공업(329180)과 한화오션(042660)은 이미 '원팀'을 맺고 입찰 준비에 나선 상황이다. KDDX 수주전으로 갈등을 이어가다 지난달 10조 원 규모의 호주 함정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것이 화해의 단초가 됐다. 양사는 서로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소하면서 '원팀'과 '협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비상계엄 여파로 '민관 원팀'의 동력이 반감됐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방산 수출은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상회담 등 국가의 조력이 절대적인데 사실상 관(官)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민간) 원팀을 위해선 정부에서 담당 부서나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당장 기대하긴 어렵지 않겠나"라고 했다.
KDDX 사업의 추가 지연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기본설계를 맡았다가 왕정홍 전 방사청장 사건 연루 의혹에 발목이 잡혔던 HD현대중공업이 최근 혐의를 벗었지만, 이번엔 비상계엄에 따른 국정혼란 여파가 변수가 됐다. 업계 관계자는 "(KDDX 사업) 시한이 조금 더 순연될 수 있지 않겠냐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늦어도 내년 1~2월까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현 상황과는 별개로 방산 수출이나 KDDX 사업은 정상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 중인 방산업체 지정 절차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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