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면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6.25 전쟁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냉면의 원료인 메밀을 구하지 못해 밀가루를 재료 삼아 만든 것에서부터 기원했다. 필자가 자주 가는 부산의 어느 밀면 전문 식당에는 한 장의 지도가 걸려 있다. 바로 실향민 1세인 주인장이 돌아가시기 전에 오랜 기억을 더듬어 북한의 고향집을 손수 그려 놓은 지도다. 3대로 이어지는 동안 현재 손자가 식당을 운영한다. 선친의 유언에 따라 통일되면 꼭 고향집을 찾아가겠다는 각오를 매일 다진다고 한다. 죽어서도 북녘 고향땅을 찾아가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유언이 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며 눈물을 적신다.
이처럼 우리 곁에는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여전히 그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통일은 그야말로 우리의 운명이자 숙원이다. 2025년 새해 벽두에 희망찬 미래를 꿈꾸지만 한반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정세를 돌아보면 통일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은은 남한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고 통일, 동포라는 단어까지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한국을 괴뢰라 부르며 이른바 한국 지우기에 혈안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못하게 하며 적대감을 고취하고 있다.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계는 늘 아픔으로 다가온다. 80여 년의 분단 세월도 모자라 북한은 휴전선 일대에 거대한 장벽까지 세우며 영구분단을 획책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 실현을 위해 북한 주민 인권 개선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유를 찾아 온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하고 남북 주민간 통합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정부 최초로 매년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했다. 나아가 기념일 제정의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지난 연말에는 북한이탈주민법 일부개정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북한이탈주민의 날'은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국가기념일에서 법정기념일로 그 지위가 한층 격상되면서 정권과 상관없이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피란수도 부산은 전쟁의 상흔을 딛고 한국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된 곳이다. 6.25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을 한 식구처럼 받아 포용한 것이 바로 부산의 힘이다. 이제 국민역량을 결집하고 통일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온 통일', '통일의 마중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북한이탈주민을 따스한 이웃으로 맞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남북한 통일의 가치는 무엇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남북한 출신 사람들이 적대감을 해소하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출발점은 서로에 대한 공감적 이해다. 이러한 취지에서 민주평통 부산지역회의에서는 북한이탈주민 한마음 체육대회, 부산시민과 함께하는 평화통일기원 음악회, 통일공감대 형성을 위한 부산 평화통일포럼 등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과 화합과 소통의 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2025년은 분단 80년이 되는 해다. 바꾸어 말하면 통일의 원년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시기이기도 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서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자갈치 아지매의 억척스런 정신으로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위대한 부산시민, 강인한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으로 다시금 모아질 때다. 철 지난 주체사상에 여전히 함몰된 종북, 친북세력의 반국가적 행태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만들어 가자. 그리하여 여전히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박희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지역회의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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