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어머니는 그냥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항상 무엇인가 하려고 궁리했다. 특히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특별한 요리는 꼭 메모를 해두었다가 직접 만들어보거나 남순댁에게 부탁해 만들게 했다. 여동생들은 어머니가 '식재료를 구해 달라'는 요청하면 툴툴거리면서도 기꺼이 구해 왔다. 어머니의 삶에 쉼이란 단어는 없었다. (본문중)
국내 건강·노화 전문가 박상철 전남대 교수는 50년 만에 어머니와 다시 식구가 됐다. 평생 ‘웰에이징’을 연구한 그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무심한 아들이었다.
지난 2017년 8월,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면서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에만 손님처럼 잠시 고향 집을 다녀가던 저자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위해 온 가족이 모였는데, 아버지께 입혀진 수의가 너무 낡아 의아했던 저자는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 두루마기는 네 아버지가 장가올 때 입고 온 옷이란다."
70년을 해로 한 남편의 마지막 길에 낡은 두루마기를 입힌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린 저자는 홀로 되신 어머니를 위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귀향이다. 고교(광주일고) 졸업 후 대학(서울대)에 입학하면서 고향 광주를 떠난 저자는 50년간 타지에서 삶을 꾸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설이나 추석 명절 때 잠깐씩 고향에 들러 어머니를 뵌 것이 고작이었다.
책 '백세 엄마, 여든 아들'(시공사)은 장수박사 아들과 백세 노모의 동거 일기다. 박 교수와 어머니가 함께 지낸 7년여의 시간의 뒷이야기가 담겼다.
저자는 학자에서 아들로 돌아와, 어머니와 한솥밥을 먹고, TV 연속극을 보고, 텃밭을 가꾸고, 꽃구경하며 가끔은 철없던 어린 시절처럼 잔소리와 꾸지람도 들으며 일상을 보낸다.
남편이 떠난 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어머니는 50년 만에 함께 살게 된 큰아들을 보살피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금 엄마 역할을 부여받아 잃어버렸던 활력을 되찾는다.
저자는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화도 경험한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삶과 일상, 생각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됐고, 무엇보다 "일흔 살도 나이다냐?"라는 어머니의 일갈에 나이를 핑계로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자신을 돌아본다.
이들 이야기에는 건강하게 나이 드는 비결과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지혜도 담겼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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