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의거 직후 촬영된 유리건판 자료 디지털로 공개
"日, 사진 활용해 안중근 동지 체포"…우덕순·유동하 등도 '생생'
포승줄에 묶여도 의연했던 청년…116년 전 안중근과 동지들국사편찬위원회, 의거 직후 촬영된 유리건판 자료 디지털로 공개
"日, 사진 활용해 안중근 동지 체포"…우덕순·유동하 등도 '생생'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신체가 매우 크고, 눈썹이 많고, 두 눈에 광채가 있으며, 수염이 팔자로 듬성듬성 나고, 입술은 오므린 모양이요."
1909년 11월 12일 대한매일신보에 짧은 기사가 실렸다.
약 보름 전인 10월 26일 하얼빈(哈爾濱)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사살한 혐의로 체포된 안중근(1879∼1910) 의사와 관련한 소식이었다.
'사진 도착'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사진 속 안 의사의 모습을 전하며 "각처 경찰서에 두고 그 연루자를 조사하는 데 쓰게 한다더라"고 전했다.
사진은 안 의사와 관련된 그 누구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제의 서슬 퍼런 '경고'이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6주년을 앞두고 의거 직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건판 사진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그동안 소장해 온 '안중근 유리건판 사진 자료'를 고해상 디지털 자료로 공개한다고 23일 밝혔다.
유리건판 자료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러시아와 일본 당국이 촬영한 원본 사진을 조선총독부가 유리건판 형태로 복제한 것이다.
유리건판은 일반 필름보다 해상도가 높고, 내구성이 뛰어나 1940년대까지 널리 사용됐는데 조선총독부는 장기간 보존할 중요 자료를 유리건판으로 제작해 보관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기존에 인쇄물로 알려진 바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70년대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한 자료를 모아 '한국독립운동사:자료' 등으로 정리했으나, 인쇄된 자료는 화질이 낮고 접근성도 좋지 않았다.
디지털로 되살린 자료 중에는 안 의사의 모습이 포함돼 있다.
총 3장의 사진은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된 직후, 안 의사의 신병이 러시아 측에서 일본 측으로 인계된 이후 등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 안 의사는 포박당하지 않은 채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다.
자료를 연구한 문일웅 편사연구관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10시 10분 사이 러시아 동청철도 철도헌병관리국 조사실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른 두 장의 사진은 10월 27일 오전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 안 의사의 신병이 러시아에서 일본 측으로 인계된 이후로 볼 수 있다.
안 의사는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며, 표정은 다소 굳은 듯하다.
국사편찬위원회 측은 "일부 사진은 11월 9일 통감부에 발송되었고, 일제는 이를 복제한 뒤 안중근의 동지들을 체포해 추궁하는 데 활용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안 의사와 뜻을 같이한 동지들의 모습도 담겼다.
차이지아거우 역에서 이토를 처단하고자 했던 우덕순(1880∼1950)과 조도선(1879∼?), 하얼빈에서 거사 성공을 위한 연락을 맡았던 유동하(1892∼1918)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역시 러시아 관헌에 체포됐으나, 안중근 의사와는 달리 러시아 측에 남아 6일가량 더 조사받은 뒤 일본 측에 인계돼 뤼순(旅順)으로 압송됐다.
사진은 러시아 감옥을 나와 10월 31일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하얼빈 한인들이 설립한 동흥학교의 교사였던 탁공규(1874∼?), 일본 관헌이 '밀정'이라고 기록했던 이진옥(생몰년도 미상)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각 사진과 함께 촬영 시점, 장소, 인물 정보, 기존의 역사적 오해나 오류를 바로잡는 내용을 담은 해제도 함께 공개했다.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그 동지들의 뜻을 되새기고, 국민들께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향후 '주한일본공사관기록' 등 일제의 식민 통치와 관련한 다양한 사료를 보다 보기 쉽게 정리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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