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러, 서방 기술 빼내 북극해 핵잠수함 보호망 구축

연합뉴스

입력 2025.10.23 19:37

수정 2025.10.23 19:37

유령회사 세워 서방 제재 우회…음파 탐지기 등 첨단 장비 획득
러, 서방 기술 빼내 북극해 핵잠수함 보호망 구축
유령회사 세워 서방 제재 우회…음파 탐지기 등 첨단 장비 획득

9월15일(현지시간) 바렌츠해에서 군사 훈련 중인 러시아 핵잠수함 (출처=연합뉴스)
9월15일(현지시간) 바렌츠해에서 군사 훈련 중인 러시아 핵잠수함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러시아가 북극해의 핵잠수함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유령 회사들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첨단 장비를 비밀리에 구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서방이 대러시아 제재를 통해 첨단 장비 수출 통제에 나섰지만, 러시아가 유령 회사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우회해온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독일 공영 방송 NDR 등이 공동 탐사취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유령 회사들을 이용해 음파 탐지 시스템, 수심 3천m까지 작동 가능한 수중 드론, 해저 안테나, 위장 선박 함대 등을 구매했다.

이러한 장비들은 러시아가 바렌츠해와 그 주변의 북극해 일대에 구축한 수중 감시 시스템 '하모니'에 사용됐다. 바렌츠해는 러시아 서북부와 노르웨이 앞에 있는 해역으로, 러시아의 북방함대 기지가 설치된 곳이다.



하모니는 해저 센서망을 통해 미군 잠수함의 접근을 탐지하는 역할을 한다.

러시아의 핵잠수함은 핵 억지력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러시아 본토의 지상 시설과 공중 발사 플랫폼이 적의 선제공격으로 파괴되더라도 잠수함이 살아남으면 보복 핵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복 능력의 보장이야말로 적이 함부로 러시아에 핵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궁극적인 수단이 된다. 러시아가 북극해의 핵잠수함 선단을 보호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해군 작전 전문가 브라이언 클라크는 "하모니 시스템은 러시아 핵무장 잠수함이 탐지되거나, 추적·압박을 당하거나 혹은 저지당하지 않고 항구 안팎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은 미국이 잠수함 기지 주변 지역을 감시하고 러시아 잠수함을 추적하는 능력을 약화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이라고 덧붙였다.

조달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키프로스에 본사를 둔 모스트렐로가 있었다. 이 회사는 민간·상업용 프로젝트로 위장해 10년 넘게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기업들과 거래하며 수출 통제를 피해 갔다.

이들 기업은 "불법 거래임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모스트렐로가 제공한 사용 목적이 정상적으로 보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계약서에는 러시아어 조항이 포함돼 있었으며, 모스크바 소재 기업에 장비를 임대한다는 내용도 확인됐다고 WP는 전했다.

이 같은 불법 조달망은 202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제보로 독일 당국이 수사를 개시하면서 드러났다. 관련 인물인 알렉산더 슈나킨(56)은 독일 무역법을 위반하고 모스트렐로를 위한 구매를 조율한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재무부는 모스트렐로와 연관 기업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지만, 네덜란드 공영 방송 KRO-NCRV의 취재진이 지난달 말 모스트렐로의 키프로스 본사를 방문했을 때 사무실은 이미 비워진 상태였다.

'러시아의 비밀'로 명명된 이번 탐사보도 프로젝트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모스트렐로의 송장 등을 토대로 했다.
독일 공영 방송 NDR이 주도했으며, WP와 프랑스의 르몽드, 이탈리아의 레스프레소, 노르웨이의 NRK, 스웨덴의 SVT, 영국의 더타임스, 일본의 교도통신 등이 참여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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