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정원의 섬, 제주]⑧자연을 담은 정원

뉴시스

입력 2025.10.27 08:00

수정 2025.10.27 08:00

자연처럼 보이려는 정원이 생겨나 담소요…야생 초지를 닮은 공간 도토리 캐빈…자연을 따르는 텃밭 정원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지역에 위치한 '담소요'. 마치 오름(작은화산체) 주변 들판의 풍경처럼 그래스와 사초류가 자리잡았고, 연못에는 반영이 비쳤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지역에 위치한 '담소요'. 마치 오름(작은화산체) 주변 들판의 풍경처럼 그래스와 사초류가 자리잡았고, 연못에는 반영이 비쳤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정원은 누군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공간이자, 자연과 함께 빚어낸 경관이다.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면서 생태계를 품는 그릇, 그리고 이웃과 소통하는 마당이 된다. 제주는 정원을 꾸미기에 이상적인 땅이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 화산섬 특유의 토양, 사계절 변화에 따라 피고 지는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돌과 바람, 물이 빚어낸 독특한 풍경까지 정원을 이루는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섬 곳곳에 담긴 정원을 통해 '제주형 정원(J-가든)'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간섭을 덜 할수록 자연은 보다 치밀한 과정을 통해 회복하고, 형태를 갖춘다. 최근 제주의 정원들은 그런 믿음을 실험하고 있다. 화려한 꽃이나 정교한 조경 대신, '자연 그대로'를 담으려는 정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담소요, 자연을 닮은 정원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지역에 위치한 '담소요'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인상적이다. 기념품 등을 전시, 판매하는 건물 옥상이 온통 '띠' 풀이다. 제주에서는 '새'로 부르는데 과거 초가 지붕을 덮는 귀중한 풀이다. 지금은 중산간지역 오름(작은 화산체) 등 일부에서만 보이는데, 쥐꼬리만한 하얀 꽃이 피어나 바람에 한들거리는 풍경이 일품이다. '담소요는 이런 곳이다'는 복선처럼 여겨졌다.

담소요는 감귤창고를 개조한 카페에서 차를 주문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지난 11일 오전 카페를 지나 안으로 들어선 순간, 마치 오름 주변 습지가 있는 아늑한 초지에 닿은 듯한 느낌이다. 신례천 옆 구실잣밤나무, 감귤과수원 방품림인 삼나무 등에 둘러싸인 공간이 정원처럼 보이지 않는 정원이다.

보통 정원이라고 하면 다양한 종류의 꽃이 피어난 곳은 생각하는데, 여기는 잡초처럼 보이는 풀들이 자리했다. 벼과 식물인 '그래스(grass)'와 사초류가 많다. 야생 들판에서 보이는 수크령과 꽃그령, 꼬랑사초가 잔디주변에 포진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지역에 위치한 '담소요' 카페에서는 마치 오름(작은화산체) 주변 들판의 풍경과 한라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지역에 위치한 '담소요' 카페에서는 마치 오름(작은화산체) 주변 들판의 풍경과 한라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이 없었다면 경관이 밋밋했을 정도로, 공간 구성에 있어서 '신의 한수'처럼 보인다. 수면에 비친 빛의 반짝임, 옆에 있는 나무와 풀의 반영도 감성을 자극한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제주 습지에서 볼 수 있는 송이고랭이, 골풀 등을 심었다. 경관 외에도 연못 덕분에 곤충, 개구리, 새 등이 서식하면서 종 다양성을 확장시켰다.

그래스가 위주이지만 군데군데 목련, 감나무 등 낙엽수를 심었다. 주변 상록수인 구실잣밤나무, 삼나무 등과 대비되어 계절감을 느끼도록 했다. 또한 카페 안이나 정원의 의자에 앉으면 한라산 정상 전경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자연 경관을 빌리는 '차경(借景)'이다. 전통 조경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간에 끌어들이는 기법이다.

정원 이전에는 1만㎡ 규모 감귤과수원이었다. 과수원을 매입한 뒤 농약과 화학비료에 젖은 땅이 회복할 수 있도록 2~3년을 기다렸다가 정원조성을 시작했다. 2023년 12월 개장했다가 리뉴얼 공사를 거쳐 지난해 8월1일 재개장했다. 현재 수목, 초본류 등 300여종이 자라고 있다.

담소요는 '고요한 연못가를 거닐다'는 뜻이다. 이 곳에서 온전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담소요 가드너인 편지영 팀장은 "방문객들이 이 곳에서 '정원 예쁘다'가 아니라 그냥 '좋다, 자연같다'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고,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너무 인위적이거나 디자인적인 요소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고, 그저 자연같은 공간이 되도록 관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도토리 캐빈, '퍼머컬처' 텃밭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6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위치한 도토리 캐빈은 채소, 유실수 등과 협력하는 동반식물로 '퍼머컬처' 정원을 이루고 있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6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위치한 도토리 캐빈은 채소, 유실수 등과 협력하는 동반식물로 '퍼머컬처' 정원을 이루고 있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지역 밭이 펼쳐진 농로 옆에 건물 3동으로 구성된 '도토리 캐빈'은 숲 속 오두막처럼 소박했다. 16일 오전 방문했을 때 마당 바닥에는 쿠라피아가 깔렸다. 잡초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지피식물이다. 주거건물과 펜션으로 쓰는 캐빈 주변으로는 여러 채소 사이에 꽃 식물이 자라고 있다. 마치 제주의 전통 집 주변 텃밭인 '우영팟'을 연상시켰다.

쪽파, 브로콜리 옆으로는 멜람포디움, 메리골드, 공작초, 아주가 등이 꽃을 피웠고 바질과 상추 등 채소가 곳곳에 심어졌다. 어디가 텃밭이고 정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퍼머컬처(permaculture)' 농부이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우(66)씨가 4년 전에 터를 잡은 주인장이다. 퍼머컬처는 영속적인 문화, 영속적인 농업의 축약어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모방해서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려는 방법이다.

이씨는 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국내 유명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자신이 디자인한 냉장고가 해외 어느 나라에서 문제가 된 쓰레기더미에 묻혀있는 것을 TV화면으로 봤다.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생태, 환경에 대해 관심을 쏟았다.

이씨는 "퍼머컬처는 인간이 최소한의 개입을 하면서 자연이 그대로, 원래 자연이 가는 방향대로 가되 사람이 먹을 것을 조금 더 나오게 하는 과학적인 방법이다"며 "아시아에서 이야기하는 자연농법을 하면 수확이 오래 걸리는데, 퍼머컬처는 첫 해부터 많은 농작물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6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위치한 도토리 캐빈은 채소, 유실수 등과 협력하는 동반식물로 '퍼머컬처' 정원을 이루고 있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6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위치한 도토리 캐빈은 채소, 유실수 등과 협력하는 동반식물로 '퍼머컬처' 정원을 이루고 있다. 2025.10.27. ijy788@newsis.com
이씨는 또 "서양에서 '가드닝'은 텃밭농사로 꽃과 농작물 생산과의 구분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가든을 정원으로 번역하기 때문에 꽃만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요즘은 꽃 정원을 플라워 가든으로 분류해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와 정원의 경계는 없지만 식물을 선택할 때 서로 도움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대신 식물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토마토에 생기는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 향이 강한 바질을 옆에 심는다거나 귤나무, 사과나무 꽃의 수분을 돕기 위해 벌이나 나비를 부르는 밀원식물을 주변에 배치한다.

귤나무 주변에는 수선화를 심었다. 수선화 뿌리가 단단해 잡초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과실용으로는 무화과, 복숭아, 자두 등을 심었다. 유실수이자 정원수 역할을 한다. 뽕나무, 보리수나무는 땅 속 질소를 고정시켜주는 목적으로 식재한다.


그는 농사와 정원의 경계를 두지 않고 700㎡ 규모를 통합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농작물, 유실수, 화초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자연을 따르는 정원'을 꾸미고 있다.


*이 기사는 제주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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