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백승주가 펼치는 사전 밖의 아홉가지 언어학

뉴스1

입력 2025.10.27 08:48

수정 2025.10.27 08:48

[신간] '다른 우주의 문법'
[신간] '다른 우주의 문법'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언어학자 백승주가 인어의 음운론에서 4·3의 기억, '그녀' 대명사의 가능성까지, 역사·상상·비평을 아우르는 아홉 편을 묶은 '다른 우주의 문법'을 펴냈다.

책은 교과서의 골조 위에 픽션과 에세이를 얹어 "사전 밖 세계"를 지향한다. 저자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처음 가르칠 때"의 감각을 "난파당하다"는 말로 설명한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했던 모국어의 틈이, 타자의 시선 앞에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이 난파의 체험은 개별 장들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증폭된다.

어떤 장면은 바다의 수심과 호흡으로, 어떤 장면은 사전과 문법책의 경계선으로, 또 어떤 장면은 '여성 대명사'라는 논쟁의 지점으로 뻗어 나간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현장'이며, 낱말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라는 통찰이 아홉 편의 변주를 통해 반복된다.

이 책의 결은 줄곧 "언어는 세계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틀"이라는 명제로 되돌아온다. '인서울'이라는 농담 같은 은어가 욕망의 기표로 부활해, 실제 도시·정책·교육의 질서를 바꾸는 과정을 저자는 추적한다. 말이 사람을 통과해 세계가 되고, 세계가 다시 사람을 통과해 말이 되는 순환의 회로—그 회로가 이 책의 핵심 풍경이다.


독자는 장면의 접속사처럼 배치된 고유명사와 데이터를 따라가며, 자신이 쓰는 말이 어떤 세계를 '가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차단'하는지를 함께 묻게 된다.

아마도 독자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자신의 일상 언어 몇 개를 조심스럽게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에 닿을 수 있다.
그 결심이야말로 백승주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실용적인 문장이다.

△ 다른 우주의 문법/ 백승주 지음/ 김영사/ 1만 8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