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李대통령이 띄운 APEC 승부수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2 19:12

수정 2025.11.02 19:12

김경수 정치부 부장
김경수 정치부 부장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력이 한미 관세협상 극적 타결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협상은 피를 말리는 상황의 지속이었다. 마지막 담판인 한미 정상회담 수일 전까지 우리측 협상단이 미국을 오가면서 백악관 인사들을 만나 타결을 모색했지만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정부는 '노딜(협상 무산)' 배수진까지 쳤다. 국익에 어긋나는 관세협상을 무리하게 타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벼량 끝 외교'가 실패할 경우 온갖 비난이 이 대통령에게 쏟아질 것이 뻔한 일이었다. 타결 불발 시 장기간 경제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우리 정부로서도 위험 부담이 컸다.

다행스럽게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담판에 성공하면서 관세협상은 극적 타결됐다. 그런데 한미 간 관세협상 담판에서 전 세계인의 눈길을 끈 것은 사실 통상 부문보다 되레 안보였다. 이 대통령은 생중계되는 정상회담 와중에 핵추진 잠수함을 허용해달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면전에서 직접 요구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외교 관례상 공개된 자리에서 중대 안보사항을 언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어쩌면 돌발외교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었기에 가능한 제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하루 만에 한국산 핵추진 잠수함을 승인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미국 내 한화 필리조선소 내에서 건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파격 승인이었다. 한국이 지난 20년간 풀지 못한 핵추진 잠수함을 한미 정상회담 단 하루 만에 승인을 받아낸 것에 전 국민이 놀랐다. 전 세계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 승인을 일제히 보도했다.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국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확실한 한미동맹을 각인시키는 계기도 됐다. 이 대통령은 한국산 핵추진 잠수함이 중국과 북한의 인근 잠수함 정찰에 필요하다고 상세한 요청 이유를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을 위해 방한하기 하루 전이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파격적이었다. 이후 이 대통령은 안보 분야에선 보수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나도 보수지만 이건 인정이다'라는 기사 댓글들이 유독 많았다. 국민의힘 내 일부 의원들조차 후한 점수를 줬다. '셰셰' 논란으로 이 대통령에게 씌워져 있던 '친중 좌파' 굴레를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완전히 털어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다만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해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한국산 잠수함에 쓰일 핵연료를 한국이 직접 제조할지, 미국이 공급한다는 것인지가 아직 불분명하다. 중국의 향후 반발도 우려된다. 벌써부터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우려를 일단 차단했다.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인프라 조성비용 등이 많이 소요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다. 미국 내 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게 되면 미국 의회 내 초강경파의 반대를 피할 수도 있다. 중국의 직접 보복도 피할 수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만든 핵추진 잠수함은 한미 합작 생산으로 볼 수 있어서다. 미국 내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계기도 된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향후 연간 최대 2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이 투자금이 한미 조선협력의 상징인 필리조선소의 핵추진 잠수함 제조 인프라 구축에 우선 투입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된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에도 우선 공급하겠다고 설득 작업을 벌인다면 안 될 이유도 없다.
고생이 많았지만 20년 숙원사업의 마무리까지 조금만 더 힘내주길 바란다.

rainma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