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유력인사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만나서 '소맥'(소주+맥주)을 마신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깐부치킨'이라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친구들 간의 우정 놀이를 한 것이 화제로 떠올랐다. '골든벨'(그 매장의 매출을 전부 부담하는 것)도 울린 모양이다. 물론 재벌들이니 혼자서 그 매장의 지출을 다 부담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나 그들의 모임 자체가 의미가 있고, 서민처럼 어울리는 모습이 나름대로 신선한 감을 준다.
'깐부', 언어가 시대와 함께 변하는 모습 보여줘
세 사람의 회동으로 다시 주목받은 '깐부'란 표현은 언어가 항상 변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다른 예로 '어리다'라는 말이 과거에는 '어리석다'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단어도 있다. 이런 것은 신조어라고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쓰다가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오징어 게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다시 유행되는 단어도 있다. '깐부'가 그것이다.
'깐부'는 무슨 말인가. 우리 어린 시절에는 '깐부', '깜보' 등으로 썼다. 사실 의미도 모르면서 서로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소꿉친구' 중에 특별히 가까운 친구를 이를 때 쓰던 말이다. 1960년 대로 돌아가 보자. 그때는 딱지도 치고, 구슬치기도 하면서 놀았다. 이때 편을 나눠 딱지나 구슬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을 때 이들을 '깜보' 혹은 '깐보'라고 했다. 당시의 의미를 살려서 표현한다면 짝꿍이라고 할 수 있고, 요즘 말로 하면 '절친(?)'이라고 하겠다.
'AI깐부 러브샷', 신조어 난립을 돌아볼 때
그 기원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후라이 보이' 곽규석 씨가 사회를 보던 모 쇼 프로에서 밴드를 이를 때 항상 '캄보 밴드'(combo band)라는 표현을 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때 우리는 함께 장단을 맞추는 사람들을 '캄보'(combo : 소규모의 재즈나 댄스 음악 악단, 3인에서 7∼8인으로 구성)라고 하는 것으로 알았고, '캄보>깜보>깐부'로 변한 것이 아닌가 유추해 본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에서 다시 옛말을 소환해서 '깐부'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고, 치킨 프랜차이즈의 고유명사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임을 방영한 뉴스를 보면 온통 새로운 용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소맥'이라는 단어도 요즘에 생성된 말이고, 또다시 새로운 용어 'AI깐부'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행사를 보도한 신문의 제목을 보면 "젠슨 황·이제용·정의선 'AI깐부 러브샷'…이런 게 행복"이라고 돼 있다. 그러면서 해설하기를 '글로벌 AI 동맹의 강력한 신호탄'이라고 했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다. 필자는 한국어를 40년 넘게 가르쳐 왔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외국어(외래어 포함)가 난무하는 현상은 처음 본다. 신문의 뉴스 제목에까지 'AI깐부 러브샷'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니, 독자로서는 '이게 뭔가?'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뉴스에 등장하는 어휘들이 과거에 비해 신조어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고 있다. 신조어는 주로 축약어가 많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와 같은 말은 이제 신조어 세계에서는 고전이 돼 버렸다. '힘숨찐'(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 '헬린이'(헬스+어린이=헬스장에 처음 온 초보자), '등린이'(등산+어린이=등산 초보자) 등과 같은 단어들이 매일 새롭게 생성되고 또 성장하고 소멸한다('왕따'라는 단어는 살아남았지만 '은따'(은근히 따돌림) 같은 단어는 사라졌다).
언어도 진화…우리말의 정체성과 품격은 지켜야
유명 연예인들은 유행어를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짜며 새로 재미있는 단어를 양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곧 뇌리에서 멀어진다. 유행 따라 가버리는 것이다. 언어도 유행어를 따라가는 현상이 있지만 이제는 가능하면 품위 있는 언어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젊은 미래 세대의 CEO들이 만나서 아름다운 내일을 구상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미래 시대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될 수도 있다. 한 명의 천재가 수천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는가. 미래를 구상하는 젊은 CEO들의 인간적인 모임이 좀 더 잦았으면 좋겠다.
다만 이들의 모임을 나타내는 언론의 표현 방식은 조금 더 세련된 우리말로 했으면 좋겠다. 세계를 앞서가는 우리말인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않고 이상한 신조어만 나열하는 것이 결코 보기에 좋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언어는 성장해야 하지만, 품격도 함께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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