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고가에 산 쌀, 안 팔려"…日 쌀값, 공급 과잉 속 하락 우려

뉴시스

입력 2025.11.04 11:25

수정 2025.11.04 11:25

공급 과잉에도 고가 지속…농정 불신·감산 구조 한계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일본 쌀 가격이 폭등하면서 35년만에 한국쌀을 수입하는 가운데 지난 4월 22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쌀이 진열돼 있다. 2025.11.04.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일본 쌀 가격이 폭등하면서 35년만에 한국쌀을 수입하는 가운데 지난 4월 22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쌀이 진열돼 있다. 2025.11.04. ks@newsis.com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일본에서 쌀이 남아돌고 있는데도 가격은 좀처럼 내리지 않고 있다. 정부의 수급 예측 실패와 정책 불신, 수십년간 이어진 감산(減反) 중심의 농정 한계가 맞물리면서 일본 쌀 시장이 과잉 공급과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 부담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4일 일본의 쌀값이 여전히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도매시장에서는 "이제 곧 가격이 꺾일 수도 있다"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2025년산 주식용 쌀의 수확량은 전년보다 약 10% 늘어 2016년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공급이 늘었는데도 소매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지난달 20~26일 기준 전국 슈퍼마켓 1000곳의 쌀 평균 판매가격은 5㎏당 4208엔으로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도매시장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거래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누가 고가 매입분의 폭탄을 떠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간토 지방의 한 도매상은 아사히에 "고가에 산 쌀을 팔 수 없다"는 수매업자들의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며 "지금 쌀값은 지나치게 높지만 반대로 가격이 급락하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업체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안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레이와(令和) 쌀 소동'의 후폭풍이기도 하다.

지난해 일본 전역에서 쌀 품귀 사태가 벌어지자 도매업체들이 농가에 높은 값을 제시하며 앞다퉈 매입 경쟁을 벌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JA전농)가 제시한 가격보다 1만엔 이상 비싼 값에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후쿠이현의 쌀 도매업체 '후쿠이정미(福井精米)'는 조생종 '하나에치젠(ハナエチゼン)'을 60㎏당 3만3500엔에 매입했다. 통상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결과적으로 업계 전반이 서로 경쟁하며 가격을 끌어올린 셈이다.

농림수산성은 시장 안정을 위해 이미 방출한 비축미를 다시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가격 급락을 막기 위한 개입 신호"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혼란이 커지고 있다.

스즈키 노리카즈 농수상은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며 개입을 부인했지만, 업계에서는 "결국 정부가 나서서 비싼 값에 사주고 싸게 풀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일본 최대 쌀 도매업체 신메이홀딩스(神明HD)의 후지오 마스오(藤尾益雄) 사장은 "60㎏을 3만5000엔에 사서 2만5000엔에는 팔 수 없다"며 "결국 국가는 고가로 매입해 저가로 시장에 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AP/뉴시스]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직원이 그릇에 밥을 담고 있다. 2025.06.10.
[도쿄=AP/뉴시스]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직원이 그릇에 밥을 담고 있다. 2025.06.10.

소비자들이 이미 일본산 쌀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8월 일본 기업의 쌀 수입량은 1만5000톤으로, 전년 동월 대비 237배나 늘었다. 슈퍼마켓에서는 미국산과 정부 비축미가 더 많이 팔리고 있고 가정에서는 쌀 대신 파스타나 면류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일본의 오랜 감산 중심 농정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계속하다 보니 규모가 작은 비효율 농가는 보호받는 대신 생산성이 높은 농가의 의욕이 꺾였고 국제 시세보다 비싼 쌀값 구조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농업경제학자 나카무라 다이스케 교수는 "지금처럼 고가 구조가 유지된다면 소비자 이탈은 더 빨라질 것"이라며 "10년 안에 일본은 주식인 쌀을 자급하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정부는 가격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기보다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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