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대학에서 오랜 기간 사회정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필자의 눈으로 보면, 오늘의 부동산 논쟁은 결국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얼마를 내고, 무엇을 보장받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국은 봉급 생활자에게 소득 구간별 누진세를 엄격히 적용하면서도 부동산 보유세는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한다.
그러니 현금 여력이 있는 이들이 세금 부담이 덜한 자산으로 부동산을 선택하게 되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제도 자체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집값이 높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취득가 대비 가격이 크게 오른 경우(특히 실거주가 아니라 자산 증식을 노린 매입)에 대해 차익만큼의 세금이 제대로 매겨지지 않는 구조에 있다.
여기서 교육정책 수립 시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되는 존 롤스(John Rawls)의 사회정의론을 되새겨 보자. 롤스는 사회정의를 사회 운영의 최우선 전제로 세우고, 첫째 평등한 자유의 원칙, 둘째 차등의 원칙(공정한 기회균등과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 규범)을 제시했다. 요지는 단순하다. 기본적 자유는 모두에게 똑같이 보장하되,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하려면 출발선의 공정성이 확보돼야 하고, 그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사람들의 처지를 실제로 개선해야 정당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제도도 이 틀 안에서 설계될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지난달 15일 이재명 정부는 주택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다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규제 지역 확대와 대출 규제 강화 같은 금융·행정 규제가 중심이 되고, 보유세 등 세제 조정은 유보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로 경기 과열을 식히는 데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 거래의 속도를 늦추고 레버리지 유입을 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익에 대한 기대가 건재한 한(특히 공시가격과 시세의 간극이 유지되고 실현이익에 대한 일관된 누진과세가 작동하지 않는 한) 자본의 쏠림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롤스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번 대책은 규제만 강해졌을 뿐 공정한 기회를 넓히고 사회적 약자를 실제로 돕게 할 세제 개편은 빠져 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시장의 반응은 썩 좋지는 못한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야당 당협위원장이 "내 맘대로 집도 못 사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이 문구에는 진실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 합법적 거래를 원천적으로 막는 접근은 자유의 원칙에 어긋나고 부작용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유가 정당해지려면 그 자유로 얻은 이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공평해야 한다. 내 돈으로 집을 살 자유는 인정하되, 그 집으로 발생한 이익만큼은 사회와 공정하게 정산하자는 것이 필자가 제안하는 기본방향이다.
그래서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이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에 가깝게 맞추는 일이다. 봉급생활자의 세금이 실제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되듯 주택 보유세도 실제 가치에 근접해야 형평이 맞는다. 물론 급격한 도입으로 인한 충격을 피하려면 명확한 로드맵과 유예기간을 두되,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되돌릴 수 없도록 법과 지표로 고정해 보유세가 자산 규모를 정직하게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취득가 기준 보유세 옵션'과 '실현 차익 누진과세'의 결합이다. 주택을 살 때 취득가액을 정확히 신고하고, 주택을 보유하는 기간에는 최초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보유세를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보유한 주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경우에는, (매도가–매입가) 전액을 기준으로 보유 전 기간에 걸쳐 누진적 양도세를 정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기술적으로 어려웠겠지만 전산화가 정교하게 이뤄진 현시점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매입 시 다운계약의 유인도 일정 부분 감소하고, 1주택 실거주자는 거주 중 과도한 세 부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보유세 논의가 점화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내가 거주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집값을 누가 올려달라고 했나", "(비싼) 집 한 채 달랑 있는데 보유세를 엄청나게 올리면 어떻게 세금을 납부하나"라는 반대 논리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
실제로 주택을 사서 거주하는 사람은 전혀 부담이 없고, 차익을 실현할 때만 이득의 크기만큼 공정하게 세금을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주택·단기 회전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투기꾼?)들에게는 보유와 양도 단계에서 모두 누진적 부담이 작동한다. 거래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차등의 원칙을 살리는 해법이다.
일견 단순하고 명확해 보이는 이러한 원칙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권에서의 보유세 개편 논의는 늘 뒤로 밀린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이재명 정부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런 유혹을 견디려면 부동산 정책의 기본 원칙과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명확하게 정립돼야 한다. 논의 과정에서는 '주택을 거주 목적으로 매입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한다.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는 정책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정의 신뢰 확보도 중요하다.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정부 부처 담당자와 국회 소관 위원회 구성원은 이해 충돌 방지 원칙에 따른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로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정책 담당자와 소관 위원회 위원들의 주택 보유 현황, 취득 시기, 가액을 상시 공개하는 강력한 투명성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설계자가 그 정책의 직접적 수혜자"라는 의심을 거둘 수 있다.
결론은 분명하다. "내 돈으로 집을 살 자유"는 보장하되 공시가격과 실거래 가격의 정합화로 보유세의 실효성을 높이고, 취득가 기준 보유세 옵션과 실현 차익에 대한 정확한 누진과세로 불로소득을 공정하게 환수해야 한다. 환수된 재원은 무주택자·청년·저소득층의 주거 기회 확대로 환류시키면 된다. 자유를 지키면서 정의를 구현하려면 결국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라는 기준을 정책에 분명히 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번 대책이 진짜 약이 되려면, 바로 그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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