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풍경처럼 한국에서는 부러움과 함께 "왜 아직 우리는 학술 부문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학기술 연구의 역사와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진 시간적 축적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부과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 교수의 약 80%가 "연구 시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보상체계의 과도한 평등주의는 한국보다 오히려 심각하다. 기회보다는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제도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묵묵히 연구에 헌신하는 문화를 형성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유능한 연구자의 의욕을 꺾는다는 부작용도 있다. 미국 교수의 말은 칭찬이 아니다. 노벨상급의 연구성과를 연구자들의 열정과 내적 동기부여에만 기대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70대 이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40~50대 이하 세대에게도 동일한 자기희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도 많다.
대학은 연구개발과 혁신의 거점이자 인재 양성의 기반이다. 사회 전체의 제도적 뒷받침과 대학의 자구적 노력이 병행될 때, 연구자는 비로소 자신의 열정을 성과로 바꿀 수 있다. 연구 인재들의 해외 이적을 개탄만 할 일도 아니다. 훌륭한 선수가 유럽의 빅리그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경쟁하며 한국 스포츠의 수준을 높였듯이, 연구자들의 해외 경험도 언젠가 학문의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 것이다.
주류 연구에 모두가 몰리는 대신, 다양한 연구과제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임승차자(free-rider)가 생겨 소중한 연구재원이 낭비될 위험도 존재한다. 엄정한 평가 기준과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제도 설계뿐 아니라 운용에서도 각 대학이 자율성과 균형 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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