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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계를 뒤흔든 '무즙 파동'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입력 2025.12.07 06:01

수정 2025.12.07 06:01

옛 경기중·고등학교였던 정독도서관 (출처: EllalineSeoul, 2025, CC0, via Wikimedia Commons)
옛 경기중·고등학교였던 정독도서관 (출처: EllalineSeoul, 2025, CC0,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4년 12월 7일, 대한민국 교육계를 강타한 '무즙 파동'이 발생했다. 이날 치러진 전기 중학교 입시 자연 과목 시험에서 출제된 단 하나의 객관식 문항이 격렬한 논란을 낳았고, 이는 교육 당국과 사법부, 그리고 온 국민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문제는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묻는 것이었다. 출제 당국이 유일한 정답으로 제시한 것은 녹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효소인 '디아스타제'였다. 그러나 무즙을 정답으로 골라 소위 명문 중학교 입학에서 쓴맛을 본 수험생들의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들의 주장은 확고했다. 당시 사용되던 국민학교 자연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내용이 명확히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따라서 무즙 역시 당연히 복수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기중학교, 서울중학교 등 일류 중학교에 지원했다가 1점 차이로 불합격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단순한 항의에 그치지 않았다. 학부모 수백 명은 실제로 무즙을 이용해 만든 엿을 들고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를 찾아가 "엿 먹어라"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광경은 당시 한국 사회의 극에 달했던 교육열, 곧 '치맛바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학부모들은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울시 교육감과 문교부 차관까지 물러나는 등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경질됐다. 1965년 3월, 법원은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한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 인해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들 중 일부가 구제받아 전학 형식으로 경기중학교 등에 입학했다.

'무즙 파동'은 교육 당국의 미숙한 행정과 맹목적인 경쟁을 부추기던 과열된 중학교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사건은 결국 몇 년 뒤인 1969년 중학교 무시험, 더 나아가 1974년 고교 평준화 제도 도입의 결정적 단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