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한겨레21 취재진이 헌 옷 153벌에 추적기를 달아 국내 수거함에서 해외 매립지·소각장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를 펴냈다.
책은 우리가 '재활용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넣은 옷가지들이 어떻게 인도의 불법 소각·타이의 쓰레기 산·볼리비아 황무지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업·정부·소비자가 어떤 책임을 회피하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이 책은 '우리가 버린 옷들은 모두 재활용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들은 헌 옷에 추적기를 부착해 전국 수거함에 투입했고, 4개월 동안 신호가 멈출 때까지 이동 경로를 쫓았다.
결과는 통념에서 벗어났다.
현장에서 확인된 좌표는 거칠다. 인도 파니파트의 불법 소각장, 타이 아란야쁘라텟의 쓰레기 산, 볼리비아 오루로의 황무지 - 추적기는 그곳에서 멈췄다. 저자들은 표백·재가공 과정의 화학폐수와 그로 인한 호흡기 질환·혈액암 사례를 증언과 함께 정리하며, '재활용'이라는 말이 숨기는 비용을 드러낸다.
'패션 매장 수거함'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은 '92% 재활용' '새로운 주인을 찾아드립니다' 같은 문구를 내세우지만, 매장 수거 옷들 역시 아프리카·동남아로 흘러들어간 경로가 다수 확인됐다. 책은 이를 '그린워싱'으로 규정하고, 마케팅 뒤에 감춰진 재고 소각·수출의 구조를 데이터와 사례로 폭로했다.
제도 공백도 비판의 핵심이다. 프랑스·EU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 EPR과 '재고 의류 소각 금지' 같은 규제를 도입·예고하지만, 한국은 의류를 EPR에서 빼놓고 통계조차 일관되게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저자들은 '49조 의류 산업'의 외부비용을 공론장으로 끌고 나와, 생산자·정부·소비자에게 각자의 몫을 요구한다.
책에 나온 객관적 숫치는 독자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든다. 티셔츠 1장이 종이컵 306~337개에 해당하는 탄소를 배출하고, 겨울 코트 한 벌은 종이컵 912개와 맞먹는다. 한국의 중고 의류 수출 30만 톤 중 20%가 불법 폐기된다고 가정하면, 이를 상쇄하려면 소나무 1126만 그루가 필요하다.
이 르포는 '소비자 죄책감'만을 겨누지 않는다. 기업의 재고 소각·편법 수출, 정부의 방치, 소비자의 무지·방임이 맞물린 '삼중 구조'를 문제의 뿌리로 지목하고, 규제·기술·소비습관의 동시 전환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 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한겨레출판/ 1만 9000원/ 264쪽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