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내 인하대학교 HK연구교수 = 최근 캄보디아에서의 한국인 납치 및 사망 사건으로 스캠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의 배경에는 태국을 둘러싼 오래된 국경분쟁과 범죄 산업화라는 쉽게 해소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중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의 국경이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과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범죄의 산업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2편으로 나누어 골든 트라이앵글과 에메랄드 트라이앵글을 둘러싼 국경분쟁과 범죄의 연결성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오늘은 그 후반부, 에메랄드 트라이앵글이다.
2000년 6월 캄보디아의 제안으로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국경지대의 관광과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국제 협력 프로젝트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지역은 냉전 시기부터 지금까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분쟁의 핵심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에메랄드 트라이앵글에 포함된 캄보디아 지역으로는 프레아비히어 사원이 있는 프레아비히어주,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퉁트렝주, 최근 국경분쟁의 핵심지역으로 떠오른 웃더민체이주가 있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 지지자와 반공 세력 간의 치열한 대결이 이어진 태국의 시사껫주와 베트남,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비밀리에 폭격하기 위해 미군이 기지를 세운 우본랏차타니주, 라오스의 사라완주와 짬빠싹주도 이 트라이앵글에 포함된다.
골든 트라이앵글과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간의 차이점은 전자가 냉전 시기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초국가 무역 중심지였다면, 에메랄드 트라이앵글은 탈냉전 시기 평화적 공존과 관광산업에 대한 공동개발 협력을 목표로 국가 간의 협의를 통해 만들어진 삼각지라는 점이다.
1992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주도로 메콩강 유역 개발사업(GMS)가 시작되면서 소지역 경제협력 체제가 도입되고, 그 과정에서 골든 트라이앵글을 포함한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접경지역에 있는 5개의 트라이앵글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사업이 시작한 배경에는 수십 년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끊이지 않는 국경분쟁으로 발전이 더딘 이 지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관광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해 보자는 의지가 담겨있다. 문제는 그 관광산업이 각국의 이해충돌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관광산업이 주요 산업으로 성장해 온 동남아시아에서 문화유산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 이어져 왔다. 특히 국경 획정이 복잡하게 이루어진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관광자원의 개발 관련한 국가 간의 분쟁을 키우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1953년부터 지속해서 소유 분쟁이 이루어졌던 프레아비히어 사원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2006년 쿠데타로 태국의 전 총리였던 탁신 친나왓이 쫓겨난 가운데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유네스코에 프레아비히어 사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했고, 2008년 유네스코는 프레아비히어를 캄보디아 소유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당시 탁신에 저항하던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프레아비히어 사원의 캄보디아 세계문화유산 지정 문제를 태국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선언했고, 양국 간의 긴장 상황은 결국 2008년 10월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
고대의 문화유산뿐만이 아니라 냉전의 유산 역시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분쟁의 원인 중 하나다. 2008년 프레아비히어 사원을 두고 일어난 분쟁이 2009년에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해 4월 태국 군인이 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으면서 재개된다. 2025년 5월 무력 충돌 이후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분쟁이 7월 23일 캄보디아 접경지역인 태국의 우본랏차타니주에서 태국 군인이 지뢰 사고로 다치면서 그다음 날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이에 캄보디아 측은 이 지뢰가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여파로 남은 지뢰라고 주장해 왔다.
1975년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으면서, 캄보디아는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한다. 하지만 크메르루주의 대량 학살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19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했고,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는 프놈펜에서 후퇴해 서쪽에 있는 웃더민체이주에 있는 동렉 산맥 지역에 주둔하게 된다. 1979년 베트남에 의해 세워진 괴뢰정권인 캄푸치아인민공화국은 폴 포트가 동렉 산맥 지역에서 세력을 규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량의 지뢰를 매설했다. 2025년 7월 태국 군인이 지뢰 폭발로 다쳤을 때, 캄보디아가 1980년대에 매설된 지뢰라고 주장한 근거다.
7월 지뢰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태국은 곧 외교관과 기자로 구성된 지뢰 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사 과정에서 분쟁지역에 매설된 지뢰 중에 러시아산 PMN-2 형 지뢰가 있음을 밝혀내면서, 매설된 지뢰가 냉전의 유산이고 자신은 강대국 간의 경쟁의 희생양임을 주장했던 캄보디아에 직격탄을 날리게 된다. 태국과 캄보디아 모두 1997년 오타와 협약으로 알려진 대인지뢰 사용 금지 조약국으로, 지뢰가 최근에 매설되었다면 캄보디아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접경지역에서의 관광산업 촉진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면서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바로 옆 캄보디아의 반테이민체이주에도 개발붐이 불었다. 중국계 캄보디아 시민이자 캄보디아 상원의원인 꼭 안(Kok An)이 1999년 태국 국경 바로 맞은편인 포이펫에 크라운 카지노 리조트를 연 이후 카지노와 호텔이 속속들이 들어섰고, 해외 관광객이 급격히 증대된다. 이들 중에서는 도박하기 위해 혹은 리조트나 카지노에 취업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태국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다 2022년에 19살의 태국 청년이 크라운 카지노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꼭 안이 소유한 카지노 내 건물 안에서 운영되던 스캠 센터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에 태국 정부는 강제 구금당했던 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의 스캠 범죄에 대한 논란은 지난 6월 훈센이 태국 전 총리 패통탄 친나왓과의 통화를 폭로하면서 재점화되었다. 5월 무력 충돌 이후 악화일로에 있던 국경분쟁을 해결해 보고자 패통탄은 아버지의 절친인 훈센에게 전화했는데, 그 통화를 녹음한 훈센이 직접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것이다. 훈센은 태국이 스캠 범죄 진압을 빌미로 캄보디아 영토를 침범하고 주권을 침해하고 있어,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고 했다.
훈센의 배신에 탁신 친나왓은 훈센과 가까운 캄보디아 거물들이 태국인을 겨냥한 카지노와 스캠 사업을 장악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특정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꼭 안이다. 탁신의 폭로와 거의 동시에 태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태국인 스캠 범죄 연루자와 희생자 80%가 포이펫에 있는 스캠 센터 네트워크에 의해 유인되었다고 발표했고, 사법부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 가운데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분쟁과 스캠 범죄 논란에 전환점을 만든 사건이 지난 10월 초 보도가 폭주했던 한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이다. 시아누크빌을 비롯한 캄보디아 다수의 지역에 분포한 스캠 센터에 취업 사기를 당하거나 자발적으로 취업한 한국인에 대한 보도가 이전에도 있었지만, 10월 초부터 보도가 집중적으로 이어지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태국과 캄보디아에 한국 정부의 개입은 국경분쟁에 관한 관심을 스캠 범죄 확산 저지로 돌릴 기회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국제사회의 개입이 어려운 국경선 문제보다, 초국가 범죄인 스캠 사업이 국내외의 관심을 끄는데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앞둔 태국에게 스캠 범죄 확산 저지를 위한 대응은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던 가운데 11월 10일 월요일 프레 비히르 사원 맞은편에 있는 태국의 시사껫주에서 순찰하던 태국 군인이 지뢰 사고로 발목을 잃는 사건이 터진다. 이에 태국 총리는 10월 26일 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공동 서명한 평화협정 유예를 선언한다. 곧바로 이틀 뒤 태국군과 캄보디아군이 총격전을 벌이면서 양국은 다시 무력 충돌 태세로 복귀하게 되는데, 양국이 총격전을 벌인 곳이 바로 포이펫에서 30㎞가 안 되는 곳에 있는 국경 마을이다.
시아누크빌의 스캠 센터와 포이펫 스캠 센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후자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지역에 있어, 국경분쟁과 범죄가 서로 얽히고설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지역은 무법지대가 아니라 각국의 법과 조약이 충돌하는 회색지대다. 특히 스캠 범죄와 같은 사이버 범죄 자체에 대한 인식이 국가마다 달라 현행법이나 기존의 국가 간의 협약으로는 통제와 단속이 힘들다.
이 초국가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공조가 필수적인데 현재 태국과 캄보디아는 국경분쟁 재개로 협력이 요원해진 상태다. 시아누크빌이 전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지만, 이곳의 스캠 센터는 포이펫과 같은 국경 지역으로 후퇴하면 그만이다.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지금 대대적인 스캠 범죄 단속과 처벌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 두 국가 간의 국경분쟁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캠 범죄는 오히려 더 확장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벌게 된다. 국경 범죄는 국경에서의 분쟁이 만들어낸 회색지대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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