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중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낙점됐다. 당초 '한화 vs 흥국' 2파전이 유력했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이 국내 보험사가 아닌 중국계 자본의 승리라는 의외의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향후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한다.
힐하우스는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식 입찰)을 통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희망 가격을 1조 1000억 원을 제시하며 최고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본입찰 단계에서 힐하우스는 9000억 원대 중반의 가격을 제시해 최고가가 아니었지만 본입찰 이후 주관사측의 프로그레시브 딜 제안에 가세해 인수가를 대폭 올렸다. 경쟁자인 흥국생명은 1조 500억 원, 한화생명이 9000억 원대 후반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그레시브 딜로 가격 올린 '힐하우스'…'가격 부풀리기' 수법
프로그레시브 딜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제시해 본입찰을 통과한 인수 후보들을 대상으로 다시 가격 경쟁을 붙여 매각 가격을 높이는 방식을 말한다. 최종 낙찰자가 나올 때까지 입찰 기한을 두지 않고 가격 경쟁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경매와 비슷한 특성을 띠고 있어 경매 호가 입찰이라고 불린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과거부터 골드만삭스 등이 '가격 부풀리기' 수법으로 주로 사용해 온 방식이다. 골드만삭스가 주관을 맡았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동양매직 등이 프로그레시브 딜로 매각을 진행했다. 결국 우협 선정 가능성이 낮은 힐하우스를 내세워 인수 의지가 강한 국내 후보들이 이를 의식해 추가로 가격을 제시하도록 압박하는 미끼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이지스운용은 창업주 고(故) 김대영 회장의 배우자 손화자 씨가 보유한 지분 12.4%와 재무적 투자자의 보유 물량 등을 합친 지분 60% 이상이다. 여기에 대신파이낸셜그룹과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 측 등의 지분이 포함되면서 경우 매각 범위는 최대 98% 수준까지 확대된다.
이번 매각은 최대주주 손화자 씨의 딸인 김애미 투썸 사외이사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본격화된 것도 1년여 전 김 이사가 직접 골드만삭스와 접촉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이후 2001년부터 맥킨지앤컴퍼니에서 일하며 글로벌 투자은행(IB), 사모펀드(PEF) 인맥이 강하다. 김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투썸플레이스도 칼라일그룹이 최대주주다.
"국내 공공 부동산 관련 민감 정보가 중국 자본에 유출될 수 있다"
힐하우스는 중국 허난성 출신 기업가 장 레이가 2005년 설립한 사모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다. 장 레이는 중국 인민대학교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각각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예일대 재단으로부터 2000만 달러의 출자를 받아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텐센트, 바이두, 징둥닷컴 등 중국 대표 온라인 기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며 펀드를 이끌어왔다. 이후 중국 내 리테일·소비재 산업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했고, 포트폴리오에서도 중국 기업이 과반을 차지한다.
특히, 2020년에 실물자산 투자 부문을 분사해 부동산 자회사 '라바파트너스'를 설립 한 후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주거와 호텔 개발을 주로 해왔던 디벨로퍼인 '삼티 홀딩스'를 인수해 아태 지역 투자·운용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힐하우스는 아태지역의 상업용 부동산 자산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힐하우스는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를 통해 디지털 인프라, 주거 부문 등 신사업을 강화하고, 외국 자본과의 연계를 통해 밸류업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이 힐하우스에 넘어갈 경우 이지스자산운용이 중국 자본 부동산 투자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인수될 경우 의결권 및 경영권의 실질적 통제권이 중국계 자본으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이지스자산운용에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행정공제회 등 연기금 자금도 6조 원 이상 들어가 있다. 이들 연기금·공제회 자금은 이지스자산운용이 부동산 자산운용 선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업계에서는 중국계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쥘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정합성 등이 흔들릴 수 있다도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이지스자산운용이 힐하우스에 넘어갈 경우, 공공 부동산 관련 민감 정보가 중국 자본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단순한 기업 투자 차원을 넘어 국가 자본·자산 주권 측면에서의 리스크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지스운용은 부동산에 특화된 자산운용사로, 국내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가 상당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힐하우스가 이지스운용 경영권을 가지게 될 경우 국내 공공 성격을 가진 자산의 정보가 중국 자본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최고가 힐하우스, 금융당국 대주주심사 통과 어려워
'가격 경쟁력'만 내세운 힐하우스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지스자산운용의 최대주주를 변경하려면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심사 과정에서 재무 건전성, 사회적 신용, 자금 조달 방식의 투명성 등을 검토하는데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보다 까다로운 심의가 예상된다. 단기 투자자금 회수를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초 지난 3일로 예정됐던 우선협상자 발표 일정이 다소 늦춰진 이유가 힐하우스가 가격은 가장 앞섰지만 최종 인수까지 금융당국의 심사 등 넘어야 할 과정들이 만만치 않아 이지스자산운용이 이같은 점을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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