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명훈 산업1부 부국장 = 25년 전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당시 삼성 공채에 합격한 새내기를 인터뷰하면서 던진 질문 하나가 '꿈이 무엇인가'였다. 돌아온 대답은 '임원이 되는 것'이었다. 최고경영자(CEO)도 아니고 임원이라니, 다소 실망스러웠다. 꿈은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다시 물었다.
"삼성에서 임원이 되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CEO는 한 명뿐인데 동기만 백여 명이고, 위아래 기수까지 생각하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이다. 너무 힘들지 않겠나."
너무나 구체적인 목표와 명확한 현실 인식에 놀랐고, '노후가 보장된다'는 말은 부러웠다. 당시에는 재테크 열풍이 불기 전이라 상당수 직장인에게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재테크의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그 후로 20년 정도가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5년 전쯤 만난 한 삼성 임원의 얘기는 다소 놀라웠다. 술자리에 가면 차장과 부장 등 후배들이 자신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언제 회사를 떠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에 자가가 없다는 점도 이른바 '측은지심'의 대상이 된 이유였다.
지금은 어떨까. 삼성 임원들은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주 6일제를 이어오고 있고, 일이 있으면 일요일 출근도 다반사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헬스클럽 이용권은 너무 이른 출근 시간 탓에 무용지물이 됐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임원이 출근한다고 해서 부하 직원까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 나와야 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점이다.
'비상경영' 차원에서 시작된 임원 주 6일제는 끝날 기약이 없다. 주 4.5일제 도입이 논의되는 현실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풍경이다.
삼성에서 임원까지 승진했다면 능력이 검증된 인재라는 점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임원들의 근무 시간이 늘었으니 성과 또한 더 많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주 6일씩 일하는 임원들이 낸 아이디어 가운데 세상을 바꿀 혁신은 얼마나 될까.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이 정말로 '일하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부작용도 적지 않다. 다수가 된 MZ세대 직원들 사이에서는 '임원이 되기 전에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간다고 한다. 공을 들여 영입한 해외 인재들 역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3년 만에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말이 없는 삶'도 이들이 떠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 새내기가 실제로 임원이 돼 꿈을 이뤘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다시 만나 '아직도 삼성 임원이 꿈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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