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제약

[기자의눈] 미뤄온 숙제 '약가인하'…산업 근간까지 흔들어선 안된다

뉴스1

입력 2025.12.09 10:37

수정 2025.12.09 10:37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 위고비 입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12.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 위고비 입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12.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정부가 급속한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 속에서 보험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내세워 다시 약가 인하 정책을 발표했다. 단일 보험체계를 유지하는 한국에서 약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정책의 방식과 속도가 산업 전반의 체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약가 조정이 반복되면 기업의 매출 감소는 곧 연구·개발 R&D 투자 여력 축소로 이어진다. 성공률이 낮고 개발 기간이 긴 산업에서 이 흐름은 초기 단계 파이프라인의 위축으로 직결된다.

혁신 신약을 지속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해야할 요소다.

특히 이번 약가 인하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중견·중소 제약사의 제약·바이오 생태계 내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이들은 복제약과 표준치료제 공급을 통해 의약품 접근성을 유지하고, 지역 생산과 고용에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개량신약, 틈새 적응증 연구 등 대형사가 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을 메우는 것도 이들이다. 생태계의 허리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전체 산업이 흔들리지 않는다.

중견·중소사 제약사는 비교적 매출 감소를 감당할 여력이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인하가 누적될수록 생산·품질관리·R&D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산업의 중간층이 약해지면 신약 개발뿐 아니라 의료현장의 의약품 공급 안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장기적으로는 치료옵션이 줄어들어 의료비가 오히려 늘어나는 역효과도 우려해야한다.

그렇다고해서 위기의 보험 재정을 외면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급여비 지출이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신약·고가약 중심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약가 조정 없이 재정을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반대나 일방적 추진이 아니라, 속도 조절과 예측 가능성, 그리고 연구개발 역량을 갖춘 기업에 대한 차등적 적용이다. 재정을 아끼면서도 산업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조정 장치가 병행돼야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약가는 조정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산업의 기둥까지 함께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재정과 산업을 함께 지키려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정교한 균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