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스트리밍 최강자 넷플릭스가 WBD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지 사흘 만에 또 다른 전통적 거대 미디어 파라마운트가 넷플릭스 독주를 막겠다는 명분 하에 WBD 주주들에게 직접 호소하며 적대적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전통 미디어와 신흥 미디어의 대결인 이번 WBD 인수전은 글로벌 미디어 지형을 뒤흔들 만한 빅딜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이번 인수전의 승패는 예단하기 어렵다. 주주뿐 아니라 각국 규제 당국들의 승인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정치권의 움직임까지 더해지면 장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넷플릭스 저지 시도…파라마운트의 '전액 현금' 승부수
입찰 경쟁에 참여해 온 파라마운트는 8일(현지시간) WBD 전체를 주당 30달러 전액 현금으로 공개 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사흘 전 넷플릭스가 CNN 등을 제외하고 WBD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부문(HBO 맥스 등)만 주당 27.75달러(현금과 주식 혼합)로 총 72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체결한 거래를 뒤엎겠다며 적대적 인수를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적대적 인수란, 인수 대상 회사 이사회의 동의나 협조 없이 인수 회사가 주주들에게 직접 주식 매수를 제안하거나 위임장 대결 등을 통해 경영권을 강제로 확보하려는 행위다.
인수 대상은 넷플릭스의 경우 스트리밍과 스튜디오 사업만, 파라마운트는 CNN을 비롯한 케이블 채널까지 모두 포함한다. 파라마운트는 1084억 달러에 회사 전체를 사겠다고 제안했다.
'親트럼프' 자금 배경에 규제 승인 우위 주장
파라마운트는 적대적 인수에 나선 배경에 대해 WBD 이사회가 넷플릭스보다 더 경쟁적 입찰가와 정치적 우위를 계속해서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라마운트는 지난 12주 동안 WBD 이사회에 6가지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WBD 이사회가 "의미 있는 참여"를 한 적이 없으며 공정한 입찰 과정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를 승자로 미리 정해두었다고 주장헀다.
파라마운트가 제안한 인수금액(주당 30달러, 전액 현금)은 넷플리스(주당 27.75달러, 현금+주식)보다 높다. 파라마운트는 자신들의 입찰로 주주들에게 돌아갈 현금은 넷플릭스보다 180억 달러 더 많다고 밝혔다.
또 파라마운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의 두터운 신뢰를 기반으로 규제당국의 승인도 더 쉽게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라마운트의 제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투자회사 어피니티 파트너스와 여러 중동 국영 투자펀드의 자금이 포함된다.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엘리슨의 아버지인 래리 엘리슨은 세계 2위 부호이자 오라클 창업자로, 트럼프 대통령과도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데이비드 엘리슨 CEO는 성명을 통해 "우리의 제안이 더 강력한 할리우드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파라마운트는 WBD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며 규제 승인을 받을 확실성도 더 크며 친(親)할리우드, 친소비자, 친경쟁적인 미래를 제공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넷플릭스의 인수를 위한 정부 승인과 관련해 "시장 점유율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고, 지난 7일에도 시장 점유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정부의 승인 과정에 자신이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WBD의 HBO 맥스의 점유율을 합하면 미국 내 구독형 스트리밍 시장의 약 30%에 달해 합병 완료를 위해선 미국 법무부의 검토가 필요하다.
WBD 이사회, 불확실성과 중동 자금 우려
WBD 이사회는 파라마운트의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넷플릭스를 선택한 결정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확인했다. WBD가 파라마운트의 잇단 구애를 거절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복잡한 자금 조달 구조라고 공시를 통해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중동 자금으로 인해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국가안보 심사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다.
불확실성도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WBD 이사회는 가격만 고려한 것이 아니었다. 한 관계자는 FT에 "최우선 순위는 가치 평가액보다 즉시 서명 가능하며 규제 심사를 견딜 수 있는지"였다며 이사회는 파라마운트보다 넷플릭스의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고 전했다.
이제 파라마운트는 WBD 주주들에게 직접 호소하며 적대적 인수에 나섰고, 힘든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매각이 이루어지더라도 미국 법무부와 유럽연합을 포함한 여러 관할권의 규제 당국으로부터 1년 이상의 심사를 거쳐야만 완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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