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 평가받는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신중"
내란재판부법, '무작위 사건 배당 원칙 훼손' 공감
與지도부·법사위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져" 대립
사법부 주도 공청회 열려…11일 문형배 등 토론
여권 지도부는 재차 사법부의 신뢰 상실을 거론하며 반박하고 나섰다. 사법부와 여권 지도부의 파열음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이번주 법원행정처의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통해 우려 목소리가 분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의 기구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날 하반기 정기회의를 통해 내란전담재판부 및 법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해 "위헌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두 법안에 대한 입장 표명 여부는 당초 회의 안건이 아니었다. 다만 참석한 법관 대표가 현장에서 안건을 발의했고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일부 대표는 보다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물론 법안에 대한 논의가 사법부 불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려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입장문에 '비상계엄과 관련된 재판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지대한 관심과 우려에 대하여 엄중히 인식한다'는 문구가 병기된 이유다. 하지만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의 상고심을 두고 열린 임시회의와 비교하면 분위기는 달라졌다.
올해 6월 임시회의 당시에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을 둘러싼 5개 안건을 논의했지만 모두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두배 더 많이 나와 부결됐다. 적어도 내란전담재판부 및 법 왜곡죄 신설 추진에 대해서는 사법부 전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앞서 5일 전국 각급 법원장 43명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정기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관련 법안에 대해 "재판의 중립성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해 위헌성이 크다"고 밝혔다.
영장전담법관과 재판부 구성에 법무부 장관이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헌성 시비를 낳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안은 전담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를 9인 위원 중 3명을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게 돼 있다.
당장 법원의 무작위 사건 배당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헌법은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정해져 있으나, 정권이 자의적으로 재판부를 구성해 원하는 판결을 얻어내려는 시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법 왜곡죄 도입 법안(형법 개정안)은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 법관·검사가 고의로 법리를 왜곡·조작하면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게 왜곡, 조작이 아닌지 불분명하고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에게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민주당 일각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내부에서도 위헌 논란이 제기되자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내란·외환 관련 형사재판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있어도 재판을 중단하지 않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도 지난 5일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법원이 종국 판결까지 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 107조 1항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재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해 재판한다는 조항을 어길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한 것이다.
다만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사법부 비판이 계속됐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전날 전국법관대표회의 입장에 "전국 법관들이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다"며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내런전담재판부) 설치가 필요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사법부와 여권 지도부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날부터 법원행정처는 법률신문사와 공동으로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 방향과 과제'를 진행 중이다.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이뤄진 첫 세션에서는 시민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은 "이번에 내란전담재판부를 허용한다면, 다음 정권에서는 가령 '선거사범 전담부'를, 그 다음에는 '대형재난 사건 전담부'를 만들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사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마지막 날인 오는 11일 오전 10시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등을 비롯한 중량급 인사들이 토론을 벌인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진행되는 해당 토론은 참여정부 시절 사법개혁 실무를 이끈 전직 대법관인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가 좌장으로 참여한다. 진보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 여권의 사법개혁안에 날 선 비판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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