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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증원 대신 하급심 법관 늘려야"…공청회, '1·2심 강화' 한목소리

뉴스1

입력 2025.12.09 15:02

수정 2025.12.09 16:22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과제 공청회'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5.12.9/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과제 공청회'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5.12.9/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남해인 기자 = 여권이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상고심 강화 위주의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법원 안팎에서 하급심을 강화해야 재판 지연을 해소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법원행정처 주최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재판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한 기우종 서울고법 인천재판부 고법판사는 이같이 밝혔다.

기 부장판사는 "201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민·형사재판 신속성은 세계에서 매우 우수한 편에 속했다"면서 "2010년대 후반부터 재판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지연이 가속화됐다"고 진단했다.

반면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지 않고 서면 심리만 이뤄지는 상고심은 코로나19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처리 기간이 단축됐다고 봤다.

기 부장판사에 따르면 1심 민사합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7년 293.3일에서 지난해 437.3일로 49% 증가했으나, 상고심 처리 일수는 2013년 252.3일에서 지난해 172일로 15.6% 감소했다.



그는 난도 높은 사건이 늘고 공판중심주의가 정착한 데다 법관 정원이 장기간 동결된 데서 이유를 찾았다. 잦은 인사이동에 따른 빈번한 재판부 교체와 사회 전반적으로 가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강해진 경향도 꼽았다.

그럼에도 기 부장판사는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은 1, 2심(사실심)에서 결정된다"며 "사법 신뢰를 위해서는 재판지연 해소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공두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법관 임용을 늘려 재판지연을 해소함과 동시에 급격한 제도 변화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지난해 법관 퇴직자가 100명을 기록하는 등 가동법관이 감소하는 만큼 증원을 통해 임용을 늘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도 법관 임용 시 경력법관 자격을 높였다가 신규 법관이 줄어든 전례를 언급하며 "제도가 지나치게 급격하게 변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제언했다.

김기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수석부회장(변호사)은 법관 정원과 처우를 상향해 재판 지연을 해소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법관 정원을 늘림으로써 법관 1인당 업무량이 적정하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은 "예산과 인력을 머리가 아닌 손발에 집중해달라"며 대법관 증원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대법관이 늘어나면 그들을 보좌할 재판연구관도 늘려야해 1·2심에서 경험을 쌓은 유능한 부장판사급 인력이 대법원으로 대거 차출될 것"이라며 "가뜩이나 힘겨운 하급심의 '인력 공동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의 최우선 순위는 대법관 증원이 아니라 사실심 법관의 대폭적인 증원과 재판 지원 인력의 확충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두고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내란전담재판부를 허용한다면 다음 정권은 가령 선거 전담부를, 그다음은 재난사건 전담부를 만들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그때마다 사법부는 정치권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사법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를 주제로 이준범 인하대 법전원 교수가 증거수집절차에 대한 발표를 이어갔다.

법조계에서는 현행 민사소송법상 소송 당사자 간에 증거를 확보하고 제출하는 과정에 불균형이 발생해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교수는 소송 도중 재판부의 문서제출명령 제도 개정이나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전 당사자 간 정보교환 절차)를 국내 실정에 맞춰 도입하는 방안 등을 언급했다.

유아람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판결 공개와 재판 중계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비식별 대상 정보를 특정해 사생활을 보호하는 형태로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부장판사는 인공지능(AI)의 판결데이터 이용을 허용하면서도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별도의 데이터 제공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가조건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