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쌓여가는 쿠팡 상대 손배소…미국·유럽형 집단소송제 도입 이뤄질까

뉴스1

입력 2025.12.09 15:21

수정 2025.12.09 16:00

9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2025.1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9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2025.1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9일 서울시 송파구 쿠팡본사 입주 건물 앞에서 '고객정보 유출, 노동자 생명과 안전 방치 총체적 불법기업 쿠팡 규탄 민주노총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5.1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9일 서울시 송파구 쿠팡본사 입주 건물 앞에서 '고객정보 유출, 노동자 생명과 안전 방치 총체적 불법기업 쿠팡 규탄 민주노총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5.1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한수현 기자 = 3370만 개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쿠팡을 상대로 이용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가 이어지면서 국내에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집단소송 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힌 가운데, 수년째 논의로만 이뤄진 집단소송 제도가 쿠팡 사태를 계기로 도입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벌써 소 제기만 'n십만 명'…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지향은 전날(8일) 쿠팡 고객 정보 유출 피해자 1만 330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아울러 지난 2일에는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지향 외에도 법무법인 청, 일로, 대륜, LKB평산 등에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순차적으로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국내에선 집단소송이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지만, 실제 민사상 공동소송에 불과하다. 현재 집단소송은 증권 분야 등 자본시장법상 집단소송 외 나머지 분야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쿠팡 사태와 관련해서도 손해배상이 인정되더라도 해당 사건에 원고로 참여한 피해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앞서 국회에서는 10년 전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계류된 상태에서 폐기됐다.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실제 도입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제도의 부재로 인한 혼란은 쿠팡 사태로 이어졌다. 수천만 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는데도 피해자들은 각자 소송 제기를 고민하고 어떤 로펌의 소송에 참여할 것인지 택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김묘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집단소송제가 있었다면 단일한 소송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애초 피해자들이 훨씬 쉽게 집단소송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대부분의 피해자가 배상을 받게 되고, 모든 피해자가 동일한 기준으로 배상을 받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도 하나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하여 더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며 "법원도 하나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하여 더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고, 무엇보다 기업에 강력한 경고 효과를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시행 중인 집단소송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피해를 입은 몇 명이 대표 원고로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 판결의 효력이 나머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 전체에게도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미국 3대 이동통신사 중 한 곳인 T모바일은 지난 2021년 고객 약 766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해 합의금으로 3억 5000만 달러(약 5100억 원)를 지출했다. 이와 별개로 사내 보안시스템 강화를 위해 최소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법원에 약속하기도 했다.

쿠팡 사태 이후 한국 로펌이 미국에서 쿠팡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법무법인 대륜의 미국 현지 법인인 미국 로펌 SJKP는 지난 8일(현지시간) 쿠팡 모기업인 쿠팡 아이엔씨(Inc.)를 상대로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소비자 집단소송을 공식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국일 대륜 경영대표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소송과 별개로 미국에서의 소송은 독자적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정부 '엄정 대응' 기조 속…전문가들 "대규모 사고 방지 위해 필요"

쿠팡 사태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한다고 재차 밝힌 정부에서도 집단소송제 도입을 두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단체소송 규정이 있지만, 손해배상 청구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손해배상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쿠팡과 같은 대규모 정보 유출 등 사고를 방지하고 소비자 전체의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집단소송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태원 법무법인 LKB 변호사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에서는 타격이 매우 클 수 있어 사전에 고객 정보 유출이나 보안 등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모든 소비자가 소송에 참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번 사태와 같은 피해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금전적인 방법으로)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운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 대해서는 모든 피해자에게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집단소송이 더 큰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사전에 충실한 주의의무를 다하거나 사후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피해보상에 적극적인 자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우선 분쟁에 있어 피해자들 사정이 취약한 분야에 한해 적용하고, 기업에는 예측할 수 있는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일정 기간 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울러 무분별한 소송을 막고자 남소를 방지할 방안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장지운 변호사는 "미국식 제도는 무분별한 소 제기 및 천문학적 수치의 배상액으로 인해 기업활동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징벌적 배상액의 상한선을 규정하는 등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태원 변호사는 "3~5년 정도 계도기간을 두고 기업에서 안전 시스템 비용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사전에 예방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처벌이나 배상 위주로만 제도를 설계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당장 관련 시스템 설비에 비용을 투입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묘희 변호사는 "개별 피해자가 아닌 공신력 있는 소비자단체나 법원이 허가한 비영리 기구에만 소송 제기 권한을 부여한다면 무분별한 소송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전문성과 공익성을 갖춘 단체가 불법행위 여부만 가리는 모델 소송의 대표 당사자가 되어 재판을 수행한다면 기획 소송을 차단하면서도 재판의 전문성과 효율성은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