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모든 관계는 순환되고 카르마(업보)는 이전되면서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황석영 작가가 600년 된 팽나무를 화자로 삼아 인간의 역사를 넘어선 지구적 생명의 순환과 카르마의 이전을 웅장하게 그린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9일 서울 중구 모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황석영 작가는 '철도원 삼대'(2020) 이후 5년 만의 신작 장편 소설 '할매' 출간에 대한 배경과 작품을 설명했다. 또한 이후 창작 활동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할매'는 600년 된 팽나무를 화자로 삼아 인간의 역사를 넘어선 지구적 생명의 순환과 카르마의 이전을 웅장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는 죽음과 존재,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고 말했다. 또한 팬데믹을 "우리가 저지른 업보에 대한 질문"으로 여기고,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넘어선 '관계의 변화'와 '순환'을 작품의 핵심 주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작품의 직접적인 모티브는 군산에서 접한 600년 된 팽나무였다. 미군 부대 건설 예정지에 홀로 남은 이 나무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최대의 자연 습지였으나 간척으로 파괴된 새만금 갯벌 문제와 환경 파괴의 참상이 스며들었다.
'할매'는 팽나무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개똥지빠귀의 생애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소설 중반까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황 작가는 "사람이 빠진 소설을 쓰는 것이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써나가면서 문장에 빠져드는 기쁨을 경험했다"며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올해 여든을 넘긴 황 작가는 최근 건강이 쇠퇴했음을 고백하면서도 창작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80대의 마지막 소망으로 "일생에서 가장 새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며 노년 작가의 자세를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에 비유했다. 300m 높이의 장대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는 '철도원 삼대'를 쓰면서 서사를 쓰는 힘을 회복했고, 그 힘으로 이번 '할매'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지난 8월 제3세계 국가들간 문화예술 협력을 목표로 하는 '칼라문화재단(KAALA, 코리아 위드 아시아, 아프리카, 앤드 라틴 아메리카)'을 군산에서 출범시킨 일을 설명했다. 또한 1987년에 중단된 '로터스 문학상'을 부활시키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는 60년대 제3세계 작가들이 조직했던 이 문학상의 부활을 통해, 한국 문학이 서구 중심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식민지와 제국주의를 경험한 '글로벌 사우스' 작가들과 연대하며 자주적인 문화예술의 흐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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