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법무부의 강제단속을 피해 숨다가 추락해 숨진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시민단체가 대통령실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고(故) 뚜안 사망사건 대구경북지역 대책위원회'(대책위) 등 30여 명은 9일 오후 12시쯤 서울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고인의 사망 43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뚜안 씨의 아버지도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한국어로 연신 "강제 단속추방 중단하라"라고 외쳤다.
대책위는 △사건 관련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 △폭력적 강제단속 정책의 전면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진상규명과 뚜안 씨의 죽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가 실현될 때까지 용산·청와대에서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는 (뚜안 씨 사망) 한 달이 넘도록 사과·설명·책임 어느 것도 내놓지 않았다"며 "법무부와 대구출입국관리소는 사망 원인을 개인의 과실로 규정하며 정부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대책위는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은 '외국인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 신뢰가 추락한다'면서도 이런 인식이 미등록 이주민 강제단속 정책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강제단속 과정에서 사망·부상·인권침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고 이번 사건 또한 구조적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꼬집었다.
김희정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대통령실 앞에서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농성을 시작하면서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뚜안 님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고 최소한 대통령의 사과는 받아야겠다, 그리고 다시는 뚜안 님과 같은 죽음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상경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꿈많던 청년 뚜안은 지난 2월 졸업 후 구직비자(D10)를 받았지만 졸업한 학과 취업을 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유학생들, 특히 D10 비자를 가진 이들은 아르바이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려운 상황에서 뚜안은 내년도 대학원 진학을 꿈꾸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2주 만에 베트남 이주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적 단속을 피해 좁고 어두운 곳으로 숨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단속은 뚜안 님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법무부는 국회의원들이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정보공개 청구에도 개인정보를 이유로 응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은 "도대체 3시간 동안 그 공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수많은 폐쇄회로(CC)TV 중에 한 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무엇을 감추기 위해 어떤 자료도 내놓지 않는 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현장에서 사장 눈 밖에 나면 계약 연장이나 재고용을 안 해주고, 일을 안시키는 등 괴롭힘이 시작된다.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면 사업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지만 이탈하면 비자가 없어지고 강제추방 당한다"고 했다. 비자를 갖추고 한국에 입국했다가도 사업장에서의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이탈하면 미등록 이주자로 자격이 박탈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다야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질적으로 대책이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가 사회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겠다 말한 바 있다"며 "뚜안 님 유족과 만나 사과해 달라. 이국 땅에서 일하던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본 뚜안 씨의 아버지는 "시민들이 공감하고 도와주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직접 만남을 청하면 응할 의향이 있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만나게 해 주신다면 부모의 입장과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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