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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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영화 '하나, 둘,셋, 러브' 촬영 종료 후 뒤풀이 다음 날, '프로고백러'로 잘 알려진 주연배우 충길은 함께 연기했던 상대 배우 현경에게 돌연 고백한다. 현경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럽고 불편하면서도 충길의 구구절절한 고백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충길이 현경에게 고백한 사실이 동료들에게도 알려지고, 이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번진다. 3개월 후 충길과 현경은 부산에서 다시 마주한다.
배우 류현경이 제작부터 연출, 배급, 홍보까지 맡아 주목받고 있는 영화 '고백하지마'는 류현경을 향한 김충길의 실제 고백에서 시작된다. 류현경 감독은 실제 배우 김충길의 고백 순간을 카메라 앞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열어간다. '대본 없는 영화'라는 실험적 형식은 즉흥성과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감정의 방향을 스스로 확장해 가는 구조를 택한다. 인위적으로 설계된 드라마가 아닌, 순간의 감정과 타이밍을 관찰하는 이 영화만의 연출적 시선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영화의 출발점이 되는 고백 장면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응시한다. 앵글의 변화를 최소화한 채 감정의 파동만을 따라가게 되면서 관객은 이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온전히 관찰하게 된다. 연출자가 배우 출신 감독인 만큼, 감정의 결을 인위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연기의 자연스러운 호흡만으로 서사를 끌어가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연출의 방향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유영하며 그 모호한 질감을 영화의 핵심적인 미학으로 가져간다.
극 초반 코미디 톤을 주도하는 것은 김충길의 즉흥 연기다. 류현경이 웃어줘서 반해 고백까지 한 김충길과 이 상황이 불편하다며 왜 고백했느냐는 류현경의 대비는 자연스럽게 웃음을 안긴다. 그럼에도 "각오를 안 한 건 아니다"라며 굴하지 않는 김충길의 태도가 폭소를 자아낸다. 서른 여섯살,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라지만 눈치도 타이밍도 잘 모르는 데다 찌질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짠하고 능청스러운 매력으로 또 한 번 더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류현경은 감정적 반응을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인물을 구축하는 노련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난데없는 고백 공격을 받지만 웃음을 좀처럼 참기 어려운 매력의 김충길을 바라보는 복합적인 감정도 매우 실감 나게 구현한다. 동시에 감독으로서도 즉흥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두 사람 사이 간극과 다른 에너지의 충돌을 정확히 포착하며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3개월이 지난 겨울, 부산에서의 에피소드는 극 초반의 코미디와는 다른 결을 형성한다. 배우들이 실제로 겪을 법한 현실적인 삶의 단면과 일상의 무게가 담긴 에피소드 속에서 웃음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페이소스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라이브 카페에서의 재회 장면은 영화의 정서적 정점을 이루며, 감정의 결이 가장 깊게 포착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결말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두 인물의 뒷모습을 여운으로 남기는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완의 결말로 두는 선택은 관객이 감정과 해석을 스스로 구축하게 만들며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여백을 만든다.
류현경의 첫 장편 데뷔작 '고백하지마'는 그의 다양한 도전이 응축된 작품이다. 대본 없는 즉흥 연기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 형식을 통해 배우의 얼굴과 감정을 진실하게 담아내는 성취를 이뤄냈다. 또한 연기와 현실의 흐려진 경계 사이 스며든 진정성으로 이것이 영화인지 실제 상황인지 끝내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을 구축하는 것으로 작품의 방향성을 실현했다. 류현경은 첫 장편이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순간의 진심과 감정, 관계의 온도를 정교하게 포착하며 감독으로서의 섬세한 연출 감각을 증명했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진화된 영화적 문법과 새로운 형식, 흥미로운 이야기로 관객을 만나게 될지 더욱 기대된다. 상영 시간 6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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