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누리호 유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9 18:24

수정 2025.12.09 19:21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지난달 27일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차세대 중형위성 3호와 12개의 큐브위성을 목표궤도에 안착시켰다. 네 번째인 이번 발사는 민간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누리호의 제작과 조립을 총괄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한 발사 운용에도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산업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77년 삼성정밀로 출발해 삼성테크윈을 거쳐 2015년 한화그룹에 인수되며 지금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

전통적 대기업이 첨단 우주 산업을 개척하고 있는 사례다. 반면 미국의 우주 산업은 2002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와 2000년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블루오리진 같은 스타트업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우주발사체를 연구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있기는 하다. 이노스페이스와 우나스텔라는 300억~500억원 규모의 벤처캐피털 투자를 바탕으로 소형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으나, 기술 수준은 1단 추진체를 재사용하는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과 비교하면 여전히 큰 격차가 있다.

고난도 첨단기술의 개발과 사업화에 있어서 미국 스타트업의 활약은 우주 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양자컴퓨터 산업에서는 아이온큐, 디웨이브 퀀텀, 리게티 컴퓨팅, 퀀텀 컴퓨팅 등 상장된 스타트업이 서로 다른 방식의 양자컴퓨팅 기술을 개발하며 경쟁하고 있다.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발전도 스타트업이 상용화를 목표로 한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총 3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을 비롯, 작년 구글이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한 TAE테크놀로지 등 1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 즐비하다.

딥테크 분야에서 미국 스타트업이 보여주는 활약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역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리벨리온이나 퓨리오사AI와 같은 딥테크 스타트업이 일부 업종에서 성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분야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는 셀트리온도 복제의약품 생산을 통해 성장한 스타트업으로, 오리지널 의약품으로 크게 성공한 스타트업은 찾기 어렵다.

10년 넘게 수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딥테크 분야의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대기업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오래된 대기업 특유의 보수적이고 느린 의사결정, 핵심 인재에 대한 부적절한 보상체계로는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딥테크 분야에서 우리의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확실한 보상체계로 우수 인재를 확보한 스타트업이 과감한 의사결정을 통해 첨단기술 개발과 사업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딥테크 분야에서 스타트업의 역할을 키우는 데 있어 급선무는 자금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 단계에서 조달하는 자금 규모는 미국 스타트업의 절반도 안 된다.
정부와 민간이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가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규모로 투자하여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