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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한국, AI 패권경쟁 시대 승자 되려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9 18:24

수정 2025.12.09 19:21

AI 반도체·데이터 인프라 등
핵심기술 독자적으로 확보하고  
인권·투명성·책임성 가치중심
AI 거버넌스 먼저 구축해야
유엔 등 국제협의체 적극 참여
규범형성의 주체로 자리매김을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인공지능(AI)은 21세기 기술패권의 핵심 축으로 부상해 단순한 산업혁신의 도구를 넘어 국가 간 전략경쟁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은 AI 역량 강화를 위해 기술, 투자, 표준, 규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쟁하고 있다.

최근 AI를 주제로 한 포럼 참석차 방문했던 베이징대학은 지난 2017년부터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최정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튜링반'을 설립하고 미래 AI산업 리더를 양성하고 있었다.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칭화대학은 이미 지난 2005년 '야오반'을 설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과학 인재를 배출하면서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특히 2019년 '쯔반'이라는 AI 특별반을 설립해 AI 분야에 특화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대표적 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에는 AI 경쟁에서 미국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것을 우려하는 글이 종종 실리고 있다.

이는 AI 응용분야의 중국 우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2025년 초 개최된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에서 젠슨 황은 다음 시대의 AI는 범용인공지능(AGI)이 아니라 에이전트AI(Agentic AI)와 피지컬AI(Physical AI)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AI가 더 이상 컴퓨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등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AGI라는 원천기술에서, 중국은 피지컬 AI라는 응용기술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등 제조 중심의 AI 융합기술에서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 본격 추진 중인 'AI+' 전략을 통해 모든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있으며, 이는 제조강국인 중국이 피지컬 AI 분야에서 산업 공동화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보다 앞서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민간 주도의 혁신 생태계, 풍부한 자본과 인재, 세계적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기술 선도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중앙집중형 동원능력과 국가 통제모델을 바탕으로 신속한 정책 집행과 산업 통합을 가능케 하고 있다. 특히 '충분히 좋은(good enough)' AI 모델을 대량생산해 개발도상국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전략은 미국이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AI 패권경쟁의 또 다른 핵심은 규범이다. 현재로서는 아직 발전이 위험보다 우위에 있으나, AI 리스크가 실제 정책 의제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투명성, 책임성을 내세워 '신뢰 가능한 AI' 규범을 확립하려 하고 있다. 2023년 발표된 백악관의 AI 행정명령은 트럼프 정권 교체로 취소되었지만, 당시 제시된 안전성 강화와 책임성 확보 원칙은 미국의 AI 정책 방향에 여전히 중요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반면 중국은 최근 들어 오픈소스 남용, 화학·생물·방사능·핵(CBRN) 통제능력 상실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효율성과 통제, 기술자립을 전면에 내세운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주도해 데이터센터, AI허브를 대규모로 확충하고 자체 반도체와 AI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며 AI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미중 AI 경쟁은 기술력 경쟁이자 어떤 규범이 세계의 표준이 될 것인가를 둘러싼 가치경쟁이다. 미국은 민주적 가치와 윤리적 투명성을, 중국은 효율성과 기술자립을 내세운다. 유럽연합(EU)은 위험 기반 접근을 택한 'AI Act'를 통해 제3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AI 산업은 아직 원천기술 면에서는 뒤처져 있지만 반도체·통신·디지털 인프라 등 핵심 기반 분야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AI 패권경쟁은 결국 누가 더 빠르게 개발하느냐와 누가 더 책임 있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AI는 산업정책이자 경제외교 전략이며, 사회윤리와 안전성의 문제다. 한국이 AI 시대의 '기술강국'과 '가치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가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응전략은 균형과 주체성의 원칙하에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기술자립이다. AI 반도체, 데이터 인프라, 알고리즘 프레임워크 등 핵심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둘째, 가치 중심 전략이다.
인권, 투명성, 책임성 등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 AI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국제협력의 플랫폼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 AI거버넌스 등 국제협의체에 적극 참여하고 중국, 일본 및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해 한국이 규범 형성의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