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남해인 송송이 기자 = 여권이 추진 중인 이른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두고 "법원은 정치권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나왔다.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상고심 강화를 중심으로 하는 여권의 '사법개혁' 추진안에 대해서는 하급심을 강화해야 재판 지연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 공청회를 진행했다.
이날 오후 '사법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논의 차례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 변호사는 "내란전담재판부를 허용한다면 다음 정권은 가령 선거 전담부를, 그다음은 재난사건 전담부를 만들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그때마다 사법부는 정치권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정 변호사는 "예산과 인력을 머리가 아닌 손발에 집중해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대법관이 늘어나면 그들을 보좌할 재판연구관도 늘려야 해 1·2심에서 경험을 쌓은 유능한 부장판사급 인력이 대법원으로 대거 차출될 것"이라며 "가뜩이나 힘겨운 하급심의 '인력 공동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의 최우선 순위는 대법관 증원이 아니라 사실심 법관의 대폭적인 증원과 재판 지원 인력의 확충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을 두고 우려의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사법개혁에 사실상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사회 불합리를 개선하고 정상화하는 과정에서는 갈등과 저항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이겨내야 변화가 있다. 그게 바로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위헌 소지 논란이 불거진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과 법 왜곡죄 신설에 대해 결론을 내지 않았지만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공청회의 '판결문 공개와 재판 중계'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는 유아람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비식별 대상 정보를 특정해 사생활을 보호하는 형태로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부장판사는 인공지능(AI)의 판결데이터 이용을 허용하면서도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별도의 데이터 제공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가조건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설명했다.
재판 지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하급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우종 서울고법 인천재판부 고법판사는 "201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민·형사재판 신속성은 세계에서 매우 우수한 편에 속했다"면서 "2010년대 후반부터 재판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지연이 가속화됐다"고 진단했다.
반면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지 않고 서면 심리만 이뤄지는 상고심은 코로나19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처리 기간이 단축됐다고 봤다.
기 부장판사에 따르면 1심 민사합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7년 293.3일에서 지난해 437.3일로 49% 증가했으나, 상고심 처리 일수는 2013년 252.3일에서 지난해 172일로 15.6% 감소했다.
그는 난도 높은 사건이 늘고 공판중심주의가 정착한 데다 법관 정원이 장기간 동결된 데서 이유를 찾았다. 잦은 인사이동에 따른 빈번한 재판부 교체와 사회 전반적으로 가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강해진 경향도 꼽았다.
그럼에도 기 부장판사는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은 1, 2심(사실심)에서 결정된다"며 "사법 신뢰를 위해서는 재판 지연 해소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공두현 서울대 법전원 교수는 법관 임용을 늘려 재판 지연을 해소할 필요가 있지만 급격한 제도 변화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지난해 법관 퇴직자가 100명을 기록하는 등 가동법관이 감소하는 만큼 증원을 통해 임용을 늘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도 법관 임용 시 경력법관 자격을 높였다가 신규 법관이 줄어든 전례를 언급하며 "제도가 지나치게 급격하게 변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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