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연 50주년 맞은 연극 '에쿠우스'
1975년 처음 상연된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문제적 고전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2월 1일까지 상연
1975년 처음 상연된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문제적 고전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2월 1일까지 상연
[파이낸셜뉴스]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바로 '붉은 말'의 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기운을 상징하는 말의 해를 맞아, 대학로에는 반세기를 이어온 가장 강렬한 '말'들이 질주하고 있다. 한국 초연 50주년을 맞이해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무대에 오른 연극 ‘에쿠우스(Equus)’가 그 주인공이다.
神이 된 말, 원시적 본능을 깨우다
‘에쿠우스’의 시놉시스는 단순하지만 충격적이다. ‘아마데우스’, ‘고곤의 선물’ 등을 쓴 극작가 피터 쉐퍼의 대표작인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Horse)'을 의미한다.
극은 말 6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17세 소년 '알런 스트랑'과 그를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이 극은 알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추리극과는 거리가 멀다. 판사 헤스터가 알런을 ‘정신과 의사’인 다이사트에게 데려온 이유에서 알 수 있듯, 극은 알런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그의 머릿속을 천천히 해부해 나간다.
그리고 다이사트는 알런의 내면에서 소년이 말에게서 느꼈던 원시적인 열정과 종교적 황홀경, 즉 '에쿠우스'라는 신성을 마주하게 된다. 사회적 규범과 정상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다이사트는 광기 어린 행동일지언정 자신만의 신을 맹목적으로 갈망했던 알런에게서 묘한 질투와 동경을 느낀다. 그의 대사처럼 “열정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창조할 수는 없는” 의사로서, 알런을 치료하며 맞닥뜨리는 모든 감정들이 그에게는 거대한 혼란으로 다가온다.
과연 그 혼란 속에서 다이사트는 알런을 무사히 치료해낼 것인가, 그리고 대체 소년이 6마리 말의 눈을 찌른 이유는 무엇인가. 광기와 이성, 원시적인 본능과 현대 문명사회의 규범, 종교와 인간의 욕망 등의 메시지를 격정적으로 무대 위에 풀어놓은 이 극은 초연 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관객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긴다.
한국 초연 50주년, 역사가 된 무대
1975년 한국 초연 당시, ‘에쿠우스’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얼마 전 별세한 고(故) 윤석화를 비롯해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신구, 박정자, 김영민, 남명렬, 정태우, 류덕환, 전박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알런으로, 또 다이사트로 분해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이번 시즌 역시 믿음직한 배우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지난 시즌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을 얻은 김시유를 비롯해 정용주, 이충곤, 도은우가 알런을 맡아 광기와 순수를 오간다. 방대한 양의 독백을 통해 지식인의 고뇌와 허무함을 밀도 있게 표현하는 다이사트 역에는 2018년부터 '에쿠우스' 무대를 지켜온 장두이를 비롯해 최종환, 한윤춘이 함께 한다.
거쳐 간 스타들의 수만큼이나, 50주년이라는 시간이 갖는 의미도 크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만큼 오랫동안, 변함없이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번 50주년 공연 역시 반세기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에너지가 집약된 무대로 관객을 압도한다.
공연을 보기 전 알아둬야 할 한 가지, ‘에쿠우스’의 시그니처라면 역시 말(馬)이다. 배우들이 직접 철제 가면을 쓰고 말의 근육과 거친 숨소리를 표현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무대 위 말들의 움직임은 관객들에게 더욱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전 공연들보다 무대가 좁아진 탓에 말의 숫자는 7마리에서 6마리로 줄었으나, 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도 객석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다. 좁은 무대를 가득 채우는 말들의 발굽 소리는 흡사 우리의 잠든 본능을 두드리듯 거칠고 뜨겁다. 연극 ‘에쿠우스’는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2월 1일까지 공연한다.
"요즘 어떤 공연이 볼 만하지?" 공연 덕후 기자가 매주 주말,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자가 직접 보고 엄선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채워줄 즐거운 문화생활 꿀팁, [주말엔 공연 한 잔]과 함께 하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