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또한 상상에서 현실의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영화에 나왔던 로봇들은 이제 현실 세계에 있다.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지 100여년 만에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준에 달했다. 올해 1월 가전·정보기술 전시회(CES)에 등장한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사물을 인식해 분류하고, 섬세한 동작으로 빨래를 개며,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조립하는 등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여기에 AI를 탑재해 인간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로봇의 출현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주는 희망적인 미래에 앞서 먼저 마주한 현실은 당혹스럽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화이트칼라'는 AI로 대체되고, 체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블루칼라'는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에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로봇을 만드는 로봇이 자신을 만든 인간 제작자를 대체하고, AI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발자들이 정작 자신이 개발한 AI에 의해 대체되는 아이러니가 더 이상 생경하지 않을 시간이 오고 있다. 이러한 산업 노동 구조의 급변은 200여년 전 산업혁명 시대를 상기시킨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수공업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AI와 로봇으로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 첨예한 노사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AI와 로봇이 가져올 글로벌 지형의 변화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는 석유처럼 AI도 국제정세를 좌우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요소'가 될 것이며, 심지어 AI 기술이전을 핵무기 확산에 비유하는 말까지 나왔다. 더 나아가 전쟁터는 언제나 신기술의 시험장이다. AI를 탑재한 전투로봇 개발은 이미 흔치 않게 시도되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AI와 로봇의 집합체인 '스카이넷'에 대적하는 인간의 생존전쟁을 그리고 있다. 인류를 위협하는 '스카이넷'의 공포가 어쩌면 예견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대한 밀물이 들어와도 끝내 잠기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일례로 인간 특유의 예지능력은 AI가 온전히 모방할 수 없는 영역이다. 로봇에 일은 시켜도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파고 속에서도 인간의 윤리로써 기술을 통제하고, 인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인류는 일찍이 원자력 기술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안전을 제일의 원칙으로 기술을 혁신해왔다. 지난 1월 원전산업 신년회에서 AI 전문가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언급한 "기술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과학기술자의 임무는 이를 안전하게 만들어 유용함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신년사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유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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